|
|
|
‘르몽드적 시각’으로 세계를 뜯어보다
|
|
|
|
〈르몽드 세계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권지현 옮김/휴머니스트·2만5000원 반세계화 앞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금융·부채 등 104가지 현안 심층 분석
“생산·소비 줄이고 공공영역 강화를” 남북관계나 종합부동산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극단적 대립·분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세상은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르몽드적 시각’이라는 말이 성립할진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진보적 일간지 <르몽드>의 국제관계 전문 시사 자매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한 책 <르몽드 세계사>는 어느새 우리와 그들을 구분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익숙해진 영미쪽 시각과는 좀 다르다. 영미쪽이 주도해온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대안적 반세계화운동에 앞장서 온 르몽드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쩌면 세상도 사뭇 달라 보일지 모른다. <르몽드 세계사>가 또 다른 것은 독특한 디자인, 그리고 폭넓고 깊은 문제의식이다. “새천년개발목표는 구조적으로 빈곤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경제모델이 남긴 심각한 상처를 대충 붕대로 감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커다란 실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기의 냄새까지 풍긴다. 개발목표를 필요하게 만든 현 경제체제를 문제시하지 않은 개발목표는 처음부터 이룩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천명한 2000년의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허황된 새천년개발 목표’라는 항목의 결론부분이다. ‘가난과의 전쟁인가, 가난한 자들과의 전쟁인가’라는 또 다른 항목이 시사하듯 돈은 오히려 빈국에서 부국으로 역류했다.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를 게 있으랴. <르몽드 세계사>의 큰 특징은 참으로 ‘일목요연’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그림 포함)와 글의 절묘한 배치 덕이다. 가로 세로 21.5×28.5㎝의 대형 판형인 이 책에는 104가지 주제들이 항목별로 나뉘어져 배치돼 있다. 한 항목당 2쪽씩인데, 다양한 모양의 지도와 글이 같은 비중으로 지면을 장식한다. 항목마다 두세개에서부터 대여섯개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지도와 도표, 그래프들이 들어차 있다. 총 250점에 이르는 이들 입체적인 지도와 그림이 이 책의 생명이다. 이냐시오 레모네, 도미니크 비달 등 국제문제 전문기자들과 알랭 모리스를 비롯한 인류학자, 경제학자, 지리학자, 국제정치학자 76명이 쓴 글도 뛰어나지만, 4명의 지도제작 전문가들이 글쓴이들의 문제의식을 시각적으로 살려낸 그림들만 봐도 한눈에 문제의 핵심이 들어온다. 한 번 펼치면 한 항목의 전모가 한꺼번에 드러나도록 편집한 것도 ‘일목요연’의 효과를 배가한다. 하지만 이 책이 모양새 예쁜 잡다한 사실들의 종합판과 다른 것은 르몽드적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참신한 주제들 때문이다. 새천년 관련 항목 바로 앞 항목이 ‘만국의 억만장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리고 ‘난공불락의 금융계’, ‘자유무역이라는 신화의 감춰진 얼굴’, ‘투기에 빠진 연기금’, ‘부채로 죽어가는 나라, 부채로 배를 불리는 나라’가 앞뒤에 포진해 있다. ‘성장없는 발전은 가능한가’라는 항목에서 성장에 대한 르몽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글은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인류가 택할 수 있는 방도를 세 가지 든다. 하나는 유엔이 채택한 ‘지속 가능한 성장’. 또 하나는 마이너스 성장 전략. 글쓴이는 지속적인 성장과 환경보전은 양립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한발전전략 자체가 서구 지배를 영속화한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마이너스 성장’은 극빈층의 욕구를 과소평가하고 빈곤문제를 서구의 가치와 인식으로 바라보는 문화적 상대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글쓴이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모든 민족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킬 만큼의 한정된 경제성장을 꾀하되 과잉성장한 쪽은 줄여 형평을 취하면서 부에 대한 관념을 바꿔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전통적 가치와 공공영역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3장 ‘세계화, 그 승자와 패자- 불평등의 폭발’이 이런 문제들을 다뤘다. 세계화는 결국 강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계재편 작업이며, 과거 유럽 제국이 저지른 과오를 지금 미국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게 르몽드의 시각이다. 한국도 뒤늦게 강자그룹 말석에 편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장들의 주제는 ‘위기의 지구- 환경의 대반격’, ‘새로운 지정학- 9·11사태 이후의 세계’, ‘끝나지 않는 분쟁- 위험천만의 진퇴유곡’, ‘거역할 수 없는 아시아의 부상- 세계의 새로운 판도’인데, ‘세계사’라는 범주로 담기에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제목 또한 도발적이다. 위기에 직면한 현대세계의 실상과 그 전망이 바로 르몽드의 ‘세계사’다. ‘도전받는 미국의 헤게모니’란 항목도 들어 있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고, 세상도 아는 만큼 보인다. 2006년 출간돼 프랑스에서 50만부, 영국에서 30만부, 독일에서 70만부가 팔렸다는 <르몽드 세계사>는 지금의 금융공황 사태를 짚진 못했지만, 세계가 왜 이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지를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미리 내다본 셈이 됐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