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로그인
컨텐츠

등록 : 2008.07.06 22:42 수정 : 2008.07.06 22:42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

한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성녀’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테레사 수녀를 알고 있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했더니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이어 장기려(1911~1995)를 아는 사람을 물었더니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마더 테레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 교수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물론 마더 테레사가 아니라 장기려의 위대성이었다. “장기려가 성자가 아니라면 세상에 성자는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지만 정작 우리들 대다수는 장기려를 잘 모른다.

몇 해 전부터 평전과 전기 등을 내놓은 일부 연구자들 덕에 우리는 장기려에 관한 전기적 사실들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방황과 좌절을 뚫고 나온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

평북 용천에서 난 그가 송도고보 시절 왜 “의사가 된다면 의사를 한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는지, 경성의전을 나온 뒤 평양의과대 외과교수와 도립병원장,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지내다가 왜 1949년 말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두고 차남만 데리고 남하해 말 못할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왜 ‘바보의사’로 불리면서 기행에 가까운 인술을 베풀다 은퇴 뒤 집 한 칸 없을 정도로 무소유로 일관하며 고보 시절 맹세를 실천하게 됐는지 말이다.

작가 손홍규(33)의 소설 <청년의사 장기려>(다산책방 펴냄)는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왜 소설인가?

<청년의사 장기려>
“세상을 떠난 게 1995년이니 그분의 생애가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아직도 생생한 사실들에 짓눌리다 보면 오히려 진실에 다가서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씨는 “그럼에도 사실의 힘이 너무 강해 일반 소설들처럼 자유롭게 쓰진 못했다”고 했다. 소설의 주무대를 상대적으로 먼 과거인 청년 시절로 잡은 것도 그래서였는데, 그러다 보니 “시공간 배경이 일제시대나 평양 등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더욱 소설 쪽으로 기울었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대중적 접근성을 높인 일종의 팩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왜 장기려인가?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런 지독한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남들과 나누며 산 사람이 존재했구나, 하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그도 4, 5년 전에야 어렴풋이 장기려의 존재를 감지했고 2년 전 잡지에 관련 글을 쓰면서 앎이 깊어졌다. 소설 작업도 그때부터 본격화했다. 400쪽에 이르는 이 두툼한 책에 매달린 사연을 작가 후기에서 좀더 생생하게 간취할 수 있다.

“소설을 쓰다 밤의 기슭에 이르면, 나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곤 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예수뿐인 장기려를 떠올리면, 그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 예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느라 예수를 닮아버린 사내, 자신이 이미 예수를 닮은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격정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내, 대개의 종교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내를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고통이다. 그렇지만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이기도 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