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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
한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성녀’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테레사 수녀를 알고 있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했더니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이어 장기려(1911~1995)를 아는 사람을 물었더니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마더 테레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 교수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물론 마더 테레사가 아니라 장기려의 위대성이었다. “장기려가 성자가 아니라면 세상에 성자는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지만 정작 우리들 대다수는 장기려를 잘 모른다. 몇 해 전부터 평전과 전기 등을 내놓은 일부 연구자들 덕에 우리는 장기려에 관한 전기적 사실들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방황과 좌절을 뚫고 나온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 평북 용천에서 난 그가 송도고보 시절 왜 “의사가 된다면 의사를 한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는지, 경성의전을 나온 뒤 평양의과대 외과교수와 도립병원장,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지내다가 왜 1949년 말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두고 차남만 데리고 남하해 말 못할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왜 ‘바보의사’로 불리면서 기행에 가까운 인술을 베풀다 은퇴 뒤 집 한 칸 없을 정도로 무소유로 일관하며 고보 시절 맹세를 실천하게 됐는지 말이다. 작가 손홍규(33)의 소설 <청년의사 장기려>(다산책방 펴냄)는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왜 소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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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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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