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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젊고 잘 논다고 다 ‘청년’ 아니오

등록 :2008-06-27 20:25수정 :2008-06-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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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년의 탄생-근대 청년의 문화정치학〉(왼쪽)과〈부랑청년 전성시대-근대 청년의 문화 풍경〉
〈문학청년의 탄생-근대 청년의 문화정치학〉(왼쪽)과〈부랑청년 전성시대-근대 청년의 문화 풍경〉
한국 근대화 주체인 ‘청년’ 담론 분석
자아-세계 불일치 번민한 ‘미적 청년’
겉멋 든 이들은 ‘부랑 청년’으로 배제
〈문학청년의 탄생
-근대 청년의 문화정치학〉

소영현 지음/푸른역사·1만6500원

〈부랑청년 전성시대
-근대 청년의 문화 풍경〉

소영현 지음/푸른역사·1만5000원

‘청년’이라는 말은 근대의 도래와 함께 탄생한 말이다. 20세기가 열리면서 조선 땅에 처음으로 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청년은 번역어였고 수입품이었다. 청년이란 말의 유통은 곧 청년이라는 존재의 출현을 뜻한다. 청년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 규정과 더불어 청년은 주조되고 형성됐다. 국문학자 소영현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쓴 <문학청년의 탄생>과 <부랑청년 전성시대>는 20세기 초반에 청년이라는 말이 출현해 진화한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애초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문학청년의 탄생>이 청년 담론의 전개 양상을 계보학적으로 살핀 책이라면, <부랑청년 전성시대>는 박사학위 논문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자료들 가운데 뚜렷한 시대적 특성을 보여주는 풍경 14장면을 뽑아내 상술한 책이다.

<문학청년의 탄생>은 청년 담론의 형성과 분화를 면밀히 짚으면서, 문학의 영역에서 등장한 ‘미적 청년’을 집중 분석하고 있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청년이라는 말은 1900년을 전후해 근대적 인쇄매체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와이엠시에이(YMCA)를 기독교 청년회로 번역한 것이 청년이란 말의 출처 가운데 하나가 됐다. 당시 기독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문명 자체를 뜻했다. 서양 문명이 이식되는 과정에서 통로 구실을 한 것이 기독교였는데, 그런 사정에 따라 ‘청년’은 근대적인 것, 진보적인 것을 표상했다. 1905년께부터 청년이란 말은 대유행어가 됐다. 그때 청년은 모더니티(근대성)를 체현한 근대적 주체를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를 선취해야 하는 이상적 주체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청년은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상호 모순적인 규정들의 복합체이기도 했다. 청년이란 말을 쓰는 사람마다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부였했다.

초기에 청년 담론을 주도한 것은 <소년> <청춘> <학지광> 같은 계몽주의적 종합잡지였다. 잡지 자체가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잡지 발간 작업은 잡지의 독자를 중심으로 하는 청년 만들기 작업이었던 것이다.” 청년 만들기는 근대 국가 창출이라는 과업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국가가 사라져 버리자 청년 담론은 구국이냐 출세냐, 인격 완성이냐 현실 개조냐 따위를 두고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우리 청년’으로 통칭되던 청년은 “‘신대한 건설’이라는 무조건적 목표를 상실한 후, 그 ‘우리’의 범주를 한층 엄밀하게 분화해 갔다.”


젊고 잘 논다고 다 ‘청년’ 아니오
젊고 잘 논다고 다 ‘청년’ 아니오
여기서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이 ‘부랑 청년’이라는 범주다. ‘젊은이라고 해서 다 청년인 것은 아니다’라는 발상이 나타난 것인데, 젊은이 그룹에서 ‘청년이 아닌 존재’를 규정해 배제함으로써 역으로 ‘청년다운 청년’을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그때 ‘청년답지 못한 청년’, ‘청년이 아닌 청년’이 바로 부랑 청년이다. 부랑 청년은 ‘게으름과 나태’, ‘사치와 허영심’에 찌든, 요컨대 목표는 없고 겉멋만 든 청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부랑 청년은 1910년대의 ‘얼치기 개화꾼’이었다. 그런 배제 담론을 통해 자신들을 이상적인 청년으로 규정한 사람들이 ‘유학생’이었다. 도쿄 유학을 다녀와 선진 지식으로 무장한 이 새 청년 지식인들은 청년 담론을 주도했고 교육과 문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또 유학 가지 않은 ‘반도 청년들’이 그런 계몽의 수혜자가 되면서 유학생과 반도 청년 사이의 문화적 간격도 차츰 좁혀졌다. 그리하여 그 지식 청년의 지반 위에서 ‘미적 청년’이 탄생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미적 청년은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있지만 그 열망을 실현시킬 수단은 딱히 없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문학이라는 ‘가상현실’에 자신들의 열망을 투영했다. 1920년대에 등장한 문학청년이 바로 미적 청년이었다. “미적 청년은 이중의 불일치에 의한 이중의 번민을 경험하게 된다. 자아와 세계의 불일치로 번민하고, 동시에 ‘허위의 자기’와 ‘참 자기’의 불일치로 번민한다.” 이 번민의 해결책으로 미적 청년들이 찾아낸 것이 ‘아름다움’과 ‘사랑’이었다. 자아와 세계의 불화를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매개해 보려 했던 것인데, 이 협소한 영역을 거점으로 삼아 미적 청년들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참 자기를 실현하는 길로 ‘상호부조의 공동체’를 발견한 쪽이 있었는가 하면, ‘극단적 세계부정’을 밀고 나간 쪽도 있었다. 다시 말해, 한쪽이 자아와 세계의 화해를 공동체 관계 정립으로 이루어내려 했다면, 다른 한쪽은 고립된 개인의 내면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감으로써 출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두 부류 모두 문학 또는 예술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불화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려 했던 미적 청년은 ‘참된 것’을 향한 열망 끝에 부정과 건설의 새로운 이념인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로 나아가기도 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그림 푸른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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