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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5 21:02 수정 : 2008.02.15 21:02

일주일치 먹거리와 함께 식당에서 찍은 가족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일의 멜란더 가족-먹거리 총지출액 45만9420원, 에콰도르의 아이메 가족-먹거리 총지출액 2만8980원, 차드 동쪽 브레이드징 난민촌의 아부바카르 가족-먹거리 총지출액 1120원, 중국 베이징의 둥 가족-먹거리 총지출액 14만2460원, (접시 바깥) 그린란드의 매드센 가족-먹거리 총지출액 25만4510원. 사진 윌북 제공. 그래픽 홍종길 기자.

〈헝그리 플래닛-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페이스 달뤼시오 지음, 김승진·홍은택 옮김/윌북·2만5000원

사진기자 멘젤·작가 달뤼시오 부부<>24개국 30개 가정 돌며 음식문화 담아 <>‘먹거리 과잉시대’ 진지한 성찰 촉구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인도네시아 파푸아 주의 우림 지역인 아스맛에서 어린아이가 인스턴트 라면을 꺼내 우두둑 베어 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아이는 라면 수프를 입에 털어 넣고 살살 녹여 먹기 시작했다. 아직 수렵 채집 생활을 하고 있는 가족을 취재하러 남편 피터 멘젤과 함께 길을 나섰던 페이스 달뤼시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구에서 가장 외졌다고 할 수 있는 작고 가난한 오지마을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영양 실조가 심각한 아이들이 생라면을 너무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생존 활동으로 삶을 꾸리고 있는 가족의 손에 들린 인스턴트 가공식품의 꽃, 라면을 본 달뤼시오는 어느새 머릿속으로 ‘음식 세계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헝그리 플래닛-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는 사진기자 피터 멘젤과 작가 페이스 달뤼시오가 24개국 서른 가정의 먹거리와 식탁, 부엌과 시장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펜으로 기록한 대형 현장 보고서다. 부부는 장 보는 가족의 뒤를 바싹 따라붙고, 이들과 어울려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 때로는 마른 짚만 깐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며 세계 여러 곳의 가정에서 먹거리 재료를 어떻게 구해 조리하고, 입으로 가져가는지를 샅샅이 취재해 담았다.

■ 세계의 장바구니 탐험=장바구니는 이미 그냥 장바구니가 아니다. 이제 세계 각지의 장바구니는 확연한 계급성을 띠고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막 장을 봐온 일주일치 먹거리를 부엌에 풀어 놓고 찍은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자. 먹거리를 사들이는 데 쓰는 돈은 1120원(차드의 난민촌)에서 45만9420원(독일)으로 널을 뛴다. 잘사는 나라로 갈수록 먹거리 양은 많아지고, 식재료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끔 쪼개져 말끔하게 가공·포장돼 있다. 반조리 및 즉석 조리 식품에 쓰는 돈도 늘어난다. 사람들의 모습도 살집을 더해간다. 먹거리를 구하러 가는 곳도 지역적 특색이 뚜렷한 재래시장에서 각종 가공 식품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대형 마트로 그 모습이 점점 닮아간다.


조리 방법과 보관 방법은 세계의 가정이 지닌 동시대의 비동시대성을 또렷이 보여준다. 조리 방법은 장작불에서 가스스토브로, 전자레인지로 복잡성을 더하고, 보관 방법은 자연 건조에서 냉장고로, 별도의 냉동고로 집이 넓어지는 만큼 자리를 점점 더 많이 차지한다.


〈헝그리 플래닛-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 거리 음식 대 패스트푸드=각 가정의 식문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외식 문화도 음식 지도에서 빼놓을 수 없다. 가정 요리와 거의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들을 제치고 거리 음식과 패스트푸드가 관찰 대상으로 올랐다. 멘젤은 이 가족들의 집 밖으로 나가 혹독하게 추운 그린란드를 빼고는 거의 모든 지역에 빼곡히 들어찬 길거리 음식과 패스트푸드점도 사진에 담았다. 각양각색의 거리 음식을 맛본 뒤 현장노트에 꼼꼼히 기록했다. 거리 음식과 패스트푸드는 간편성과 맛을 앞세우며 집을 나선 가족들의 발길을 붙잡으려 경쟁을 벌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찰스 C. 만은 책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거리 음식은 세계화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토착민들이 운영하는 거리 음식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강력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지역적 특징이 없는 패스트푸드를 거뜬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거리 음식이 위생에 취약한 점을 보완하고 스타벅스를 물리친 브라질의 노점 커피숍들처럼 서로 연대한다면, 패스트푸드가 주는 안전에 대한 환상과 친숙함, 편안함을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까?

■ 먹거리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세계 각지의 집 안팎으로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현장을 성실하게 잡아낸 사진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깃든 기록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먹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인류가 과거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갈라놓은 기념비적인 발명인 취사 활동을 시작하고 음식 보관법을 발달시킨 이래, 우리의 식탁은 어떻게 변해왔고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너무 많이 먹은 사람들이 당뇨병, 비만, 동맥경화와 심장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문제가 굶어 죽는 사람들 문제만큼 심각해진 시대에 먹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역사학자인 앨프리드 W. 크로스비는 책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지적한다. “먹는 문제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에 핵심적인 구실을 할 것이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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