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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7 19:18 수정 : 2007.05.17 19:18

강풀의 만화 ‘26년’ 단행본

책으로 다시 살아난 ‘5월 광주’

강풀의 만화 ‘26년’ 단행본

광주를 어떻게 문화적으로 복원할 것인가?

광주민중항쟁 27돌을 맞아 간행된 한 출판물이 이에 열쇳말을 자임하고 나섰다.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인터넷(미디어다음)에 연재돼 하루 조회수 200만건을 넘겼던 만화가 강풀의 〈26년〉(문학세계사)이 그것이다. 〈26년〉은 항쟁 27년을 맞아 3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됐다.

〈26년〉은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배합된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26년〉은 인터넷 연재 때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주 1~2회꼴로 새 꼭지를 낼 때마다 2천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만화와 팩션이라는 형식, 인터넷이라는 매체, 그리고 사건의 핵심 맥락을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사적인 복수극’의 정점을 향해 일로매진하도록 박진감 있고 짜임새 있게 스토리를 구성한 강풀의 뛰어난 작가적 역량이 강렬한 주제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강풀의 만화 ‘26년’
〈26년〉은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금기시되는 민감한 문제를 과감하게 정면으로 다룬 점도 득점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2006 독자만화대상-온라인만화상’을 수상한 〈26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감동” “눈물” “5·18 책임자 단죄”가 주류를 이뤘다. 27년이나 지났고, 게다가 인터넷 만화 독자들이 광주항쟁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젊은 세대가 대세인 점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반응이다.

희생자 자녀들의 ‘5·18 책임자 복수극’ 그려
사실과 허구 결합…젊은세대 폭발적 반응

줄거리와 주요 배역은 이러하다.

심미진(26). 국가대표 사격선수. 실어증에 걸려 말이 없었으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특정 장면만 보면 부들부들 떨며 “저, 저놈을 쏴 죽여야 혀…”만 되뇌던 아버지 눈앞에서 강보에 싸인 어린 딸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사살당했다.


곽진배(32). 조직폭력배 넘버 투. 민방위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벌벌 떨면서 “계, 계엄군이 온다!”고 고함치며 벽장속으로 뛰어드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너무 걱정 말더라고. 좋은 세상이 올테니께. 나도 가만있을 수는 없겠제”라며 총 들고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안수호. 조폭 두목. 주먹만 믿고 남을 괴롭히며 살아온 그는 곽진배에게 “그 날 이후로 햇빛 찬란한 금남로 거리를 한번도 대낮에 걸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부끄러웠기 때문에….” 이들을 비롯한 ‘복수 프로젝트’의 주인공들은 안수호를 빼곤 모두 1980년 5월18~27일 어린 나이에 광주에서 어머니나 아버지를 잃었다. 여기에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돼 가해자가 된 뒤 평생을 양심의 가책 때문에 고통받은 대기업 회장 김갑세(49)와 그의 아들 김주안(27)이 프로젝트 입안자, 실행자로 등장한다.

2개월 시한부 인생인 김갑세는 다짐한다. “난 내 생명이 다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김갑세의 계엄군 동료였던 마상열, 문익환 목사를 취조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 최성태가 대항마로 가세한다.

팩트에 기반한, 그리고 정치사회사적 사건을 다룬 저작이 폭발적 반응을 끌어낸 사례는 최근 드물다. 기획과 책의 완성도도 문제지만,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이 빈사상태인 요즘 같은 풍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억의 재생과 재평가를 통해 사건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가기도 어렵다. 〈26년〉은 오래전부터 노정돼온 이런 한계를, 분방한 상상력을 동원해 정면돌파함으로써 날려버릴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