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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소진의 10주기를 맞아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이 출간되었다. ‘김소진 사후 10년’을 돌아보는 글들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한국문학에 대한 비판적 점검을 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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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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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들이 고인의 대학 친구들이자 절친한 문우들이라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소진의 기억>에 실린 문인 30명의 글들에서 김소진 문학에 대한 그런 평가는 두루 확인된다. 80년대 공동체 가치 구현한 90년대 비주류
“맹목·편향된 오늘의 문단 되비추는 거울”
문인 30명 소설로 시로 산문으로 ‘추모문집’
잃어버린 ‘김소진 폴더’ 복구 나섰다 유희석 전남대 영문과 교수는 ‘김소진과 1990년대’라는 제목의 평문에서 △김소진 소설 속의 민중은 1970년대 미아리 산동네 사람만이 아니라 21세기 오늘의 민중이 겪는 희노애락의 표정까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김소진의 ‘후일담’은 이념과 탈이념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반후일담적 후일담’이고 △단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등에서는 변혁운동의 관료화 징후와 기층 민중의 주변화를 감지했으며 △중편 <목마른 뿌리>에서 보다시피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김소진 문학의 21세기적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평론가 김형중씨 역시 ‘비루한 것들의 리얼리즘’이라는 글에서 비루한 존재들의 위계 없는 등장과 발언으로 특징지어지는 김소진 소설의 리얼리즘이야말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이 운위되는 이즈음의 문학 상황을 선구적으로 구현한 형태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래 및 후배 소설가들이 산문과 소설의 형태로 표한 애정 또한 지극하다. 후배 작가 천운영씨는 ‘쥐덫과 쥐잡기’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던 김소진과의 기묘한 인연을 털어놓는다. 대학을 마치고 다시 입학한 예술대학 문창과에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쓴 소설의 제목이 ‘쥐덫’이었다. “집 안에 득실거리는 쥐를 잡기 위해 곳곳에 쥐덫을 놓으며 시간을 보내는 실직한 가장”과 운동권 아들의 이야기. 스스로 만족해하며 친구에게 보였더니, 그가 읽어 보라며 권한 소설이 김소진의 등단작인 <쥐잡기>였다. 아직 등단하기 전인 후배 작가는 <쥐잡기>를 미처 읽어 보지 못한 상태였거니와, 두 소설은 제목과 설정, 그리고 몇몇 구절까지가 흡사했던 것. “선점이라는 게 이거구나, 더 많이 읽어야 이런 일이 없겠구나, 습작소설과 작가가 쓴 소설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복잡다단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씁쓸한 생각과 아울러, 언젠가 등단하게 되면 만나서 할 얘깃거리 하나가 마련되었다는 생각에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배는 후배 작가의 등단(2000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절친한 문우였던 시인 안찬수씨는 “동트기 전/새 울음소리를/듣고 있는 게/나 혼자는 아니다”(<블랙마운틴에서>)라는 말로 친구를 그리워했고, 후배 시인 장철문씨는 “동구 밖으로 가듯이 지평선으로 가듯이/멀어져갈 때,/그냥 내버려두었다/잔을 놓는 벗의 겉옷을 집어주듯이/그때 내 상반신이 튀어나와 꺼이꺼이 울며/달아나는/그림자를 따라가 붙잡으려 했다/나는 뒤에서 내 허리를 꽉 껴안았다”(<2005년 4월, 마르세유>)며 애써 슬픔을 다독였다. 후배 작가들이 쓴 헌정 소설들도 흥미롭다. 김중혁씨는 <무방향 버스리믹스 ‘고아떤 뺑덕어멈’>이라는 단편에서 김소진의 소설 <고아떤 뺑덕어멈>의 첫 두 문장과 마지막 두 문장을 자신의 소설 속 첫 두 문장과 마지막 두 문장으로 써먹는 식으로 선배 작가에 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윤성희씨는 김소진 소설들에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 착안해 <구멍>이라는 단편을 썼다. 김중혁 소설에서 어머니가 ‘무방향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데 비해 윤성희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생의 블랙홀(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는 점은 가외의 재미를 준다. 50여명 문우, 21일 묘소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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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의 용인공원묘원에 있는 김소진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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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지 10년 ‘그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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