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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바보야, 문제는 민생이야 / 오승훈

등록 :2020-05-31 18:02수정 :2020-06-0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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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원내 민생평화상황실 공정경제팀 소속 의원들이 2018년 7월 국회에서 ‘중소자영업자 살리는 6대 민생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원내 민생평화상황실 공정경제팀 소속 의원들이 2018년 7월 국회에서 ‘중소자영업자 살리는 6대 민생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진짜 이 정부가 단가 후려치기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대기업의 갑질이나 근절해 줬으면 좋겠어.”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 생산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후배는 대기업에 납품할 때마다, 속앓이를 한다고 말했다. 단가 후려치기는 여전하고 자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자회사가 다시 수수료 떼고 하도급 주면 중소기업은 적자라도 단가 맞춰야 되는 행태가 그대로란다. 최근 출범한 중소기업중앙회의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위원회’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중기중앙회가 뭔 힘이 있다고 재벌을 상대로 납품단가 조정을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고향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고교 동창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본사 ‘갑질’이 더 교묘해졌다고 했다. “대놓고 갑질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가맹계약서에 명시하는 쪽으로 바뀌었지. 광고 전단지 1만6000매 강매나, 닭 한마리마다 책정한 광고비(300원), 유니폼 교체 요구까지는 차라리 약과야. 기천만원 들어가는 인테리어 리모델링이나 안 했으면 좋겠어. 가맹점 피 빨아먹는 이런 갑질이 죄다 계약서에 들어가 있어. 점주 입장에서 계약 연장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할 수밖에 없지.” 그나마 재난지원금 덕분에 매출이 늘었다던 그는 “주문이 는 만큼 본사에서 돈 벌게 그냥 두지 않는다”며 “이문을 남기려면 한마리라도 더 팔아야 한다”고 말한 뒤 급히 배달을 갔다. 오랜 민주당 지지자인 두 친구 모두, 대기업 갑질과 관련해선 박근혜 정부 때와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호민관들이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변화가 아예 없지도 않다. 앞서 말한 납품단가 조정위원회가 중기중앙회에 납품대금 조정협의권을 부여한 정부로 인해 출범할 수 있었다는 점도 엄연한 까닭이다. 앞으로 중소기업계의 현장 맞춤형 납품대금 조정안을 마련하는 한편, 나아가 납품대금 조정협의권 부여를 명시화하는 법률 개정도 추진할 예정이라니 기대해봄 직하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도 나름 열심이다. 지난 4월에는 수년간 하도급업체에 지급할 대금을 후려치고 위탁한 사업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갑질’ 혐의로 삼성중공업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27일에는 비록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지만 계열사를 통해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미래에셋그룹에 과징금 44억원 처분을 하기도 했다.

남은 건 거대 여당이다. 최근 민주당은 국회 개혁, 권력기관 개혁, 교육 개혁을 21대 국회에서 중점 추진할 ‘3대 개혁과제’로 선정했다.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 △언론관계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묶어 처리하려다 좌초한 ‘학습효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용한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도 남다르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생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여당 개혁과제엔 서민과 저소득층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사회경제적 개혁이 눈에 띄지 않는다. 민주당 쪽의 180석에는, 똑같이 일할 만큼 똑같이 밥을 벌 권리, 강자로부터 내 밥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해달라는 서민들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굳이 엠비(MB) 당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개혁을 표방한 정부가 이 간절함을 외면해 약한 이웃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만들지 못할 때, 그 정부를 지지한 이들은 반동적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호주머니를 채워주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재난지원금과 같은 공적 부조를 넘어, 이제는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북돋는 과단성 있는 개혁을 추진해야 할 때다. ‘그린뉴딜’이 유행이라지만, 본디 뉴딜의 본령은 ‘억강부약’이니 말이다.

오승훈 ㅣ 전국팀장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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