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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인간과동물

살아남기 위해, 아롱이는 ‘들개’가 되었을까

등록 :2020-02-24 07:28수정 :2020-03-0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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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아직 여기 개들이 있어요애린원 철거, 그 후 5개월
사설보호소 애린원 철거 뒤 5개월, 뜬장 대신 새 견사…972마리 거주
무분별한 유기, 번식 사라졌지만 부족한 인력으로 “매일매일이 전쟁”
포천쉼터의 터줏대감 ‘아롱이’는 쉼터 내에서 먹고 자지만 포획되지 않는 야생화 된 유기견이다. 아롱이가 지난달 30일 쉼터를 방문한 낯선 방문자를 쫓아 다니며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포천쉼터의 터줏대감 ‘아롱이’는 쉼터 내에서 먹고 자지만 포획되지 않는 야생화 된 유기견이다. 아롱이가 지난달 30일 쉼터를 방문한 낯선 방문자를 쫓아 다니며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경기도 포천시 사설보호소 애린원이 철거된 지 150여일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9월25일 법원의 철거 명령으로 20여년 만에 애린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무려 1652마리의 개들이 구조됐습니다. 애린원은 중성화 미비, 열악한 환경, 후원금 편취, 토지 불법 점거 등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사설보호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 곳이었습니다.

11월18일 철거된 부지에 희망의 터전이 마련됐습니다. 뜬장과 컨테이너 박스가 어지럽던 옛 애린원이 사라지고 총 7동의 새 견사가 들어서며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가 지어졌습니다.

애린원 철거는 동물권의 큰 뉴스였습니다. 국내 여러 동물단체, 수의사 단체, 후원자들이 힘을 모았고, 주말에는 200~300명의 봉사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도착하는 후원물품은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철거 5개월이 지난 현재, 포천쉼터의 겨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떠들썩했던 구조의 열기가 사그라들자 관심도 함께 줄어들었습니다. 매일 1천 여 마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포천쉼터의 하루 하루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애니멀피플은 지난 1월 중순부터 한달간 비글구조네트워크를 도와 포천쉼터의 개체를 조사했습니다. 총 8동에 나뉘어 지내고 있는 1천여 마리 개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유기견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던 개들의 얼굴을 한 마리, 한 마리 살펴 이 개들도 제각각의 외모와 성격을 지닌 하나의 생명임을 기록했습니다.

애피는 이 가운데 4마리의 개들의 사연에 주목했습니다. 보호소 주변을 맴돌며 결코 잡히지 않는 들개, 8마리의 새끼를 출산한 산모견, 암 투병중인 노령견, 그리고 보호가 어려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곤 하는 대형견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합니다. 동물보호·친환경 패션업체 ‘그린블리스’, 환경·동물복지를 추구하는 패션문화잡지 ‘오보이’와 함께 네이버 해피빈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수익금을 포천쉼터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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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는 유명 관광지인 산정호수로 오가는 길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해발 700m가 넘는 관음산과 사향산을 좌우로 둔 387번 지방도를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낯선 표지판이 방문자를 맞는다. “로드킬에 주의하세요. 근처에 동물보호소가 있습니다.” 굽은 도로를 지나자마자 개들의 우렁찬 짖음이 들려왔다. 산 중턱, 아무도 동물보호시설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도로변에 오갈 곳 없는 개들의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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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지옥’ 위에 세운 쉼터

1월20일 애린원 철거 뒤 처음으로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를 찾았다. 철거 당시 사료통 안 죽은 들쥐와 암수 구분도 없이 몰려다니던 개들의 모습으로 충격을 안겼던 옛 애린원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녹슨 뜬장과 텅 빈 컨테이너 건물이 사라진 1600여평 부지 위에는 잘 정비된 7개 동의 새 견사가 들어서 있었다.

포천쉼터 견사는 중앙 병동을 중심으로 좌우로 섹션 A~E동 노령견동 등으로 이뤄져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포천쉼터 견사는 중앙 병동을 중심으로 좌우로 섹션 A~E동 노령견동 등으로 이뤄져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포천쉼터는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규모 사설보호소 애린원이 철거된 부지 위에 세워졌다. 지난해 9월 철거된 유기견 보호소 애린원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난 개체 수와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다.(▷관련기사: 르포/20여년 만에…애린원 1000마리 유기견 세상 밖으로) 당시 애린원에서 긴급구조한 1600여 마리 유기견을 현재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보호 중이다.

쉼터에 발을 들이자 사람보다 먼저 개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입구부터 왕왕 짖어대던 서너 마리의 개가 낯선 방문자의 동태를 살피며 조용히 따라왔다. 잠시 뒤, 보호소의 동물보호와 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유선미 비구협 동물관리팀장이 애피를 맞았다. 이날 애피는 포천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1천여 마리 개들의 개체관리를 돕기 위한 사진 촬영을 논의하기로 했다.

비구협 포천쉼터는 11월 새 견사 입주 당시 암컷과 수컷을 격리수용 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비구협 포천쉼터는 11월 새 견사 입주 당시 암컷과 수컷을 격리수용 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사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에요.” 유선미 팀장은 지난해 10월부터 포천쉼터 인근에서 숙식하며 보호소를 지키고 있다. 4명의 상근 활동가도 비슷한 상황이다. 야간 당직까지 모두 14명이 보호소 운영에 매달려 있지만, 매일 천 마리의 생명을 먹이고, 돌보는 일은 말 그대로 ‘전쟁’이라고 했다.

개체카드 정리가 3개월째 작업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이유였다. 포천쉼터에 입주하면서 중성화 여부나 성별을 구분해 견사를 배정했지만 개체카드를 만들려면 아이들의 나이나 사진, 성격 등의 정보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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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줏대감? 혹은 들개?

사람들이 정신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바쁠 때 쉼터 내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개 한마리가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부터 여느 가정집 반려견처럼 짖어대던 ‘아롱이’였다. 아롱이는 늘 함께 다니는 두어 마리와 함께 우리 뒤를 쫓아오며 짖어대다가 견사 골목 사이로 숨어버렸다. 나름의 ‘아는 척’인 것 같았다.

포천쉼터의 명물 ‘아롱이’는 보호소 내에 머물지만 견사에 수용되지 않고 있는 개체다. 비구협은 아롱이와 야생화된 개들을 점차 순화시켜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포천쉼터의 명물 ‘아롱이’는 보호소 내에 머물지만 견사에 수용되지 않고 있는 개체다. 비구협은 아롱이와 야생화된 개들을 점차 순화시켜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아롱이는 왜 다른 개들처럼 견사 안에서 지내지 않을까? 옅은 갈색 털을 지닌 소형 믹스견 아롱이는 포천쉼터의 명물이다. 쉼터 내에서 먹고 자지만, 견사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 잡는 게 아니라 못 잡는 거예요.” 유선미 팀장은 아롱이가 아주 영리한 개라고 말했다.

아롱이는 2017년 애린원 해체를 위해 꾸려진 생명존중사랑실천협의회(이하 생존사) 시절부터 애린원 맞은 편 생존사 임시 쉼터에 드나들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사람 손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간식을 받아 먹으러 가까이 오긴 해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잡히지 않는 식이었다.

당시의 아롱이를 기억하는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아롱이를 ‘탈출의 귀재’라고 표현했다. “어렵게 잡아서 중성화는 시켰어요. 그런데 금방 또 탈출해 버렸죠.” 애린원 철거 뒤 구조에 일가견이 있다는 동물단체 활동가가 아롱이 포획에 나섰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볕 잘드는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아롱이(아래 왼쪽) 삼총사’. 비글구조네트워크
볕 잘드는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아롱이(아래 왼쪽) 삼총사’. 비글구조네트워크
물론 사람 여럿이서 개 한마리를 못 붙잡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아롱이와 다른 방법으로 공존해보기로 했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순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래도 집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산과 들을 배회하지만 쉼터에 낯선 이가 오면 와서 짖고, 집을 지키듯 은근히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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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강아지에게 이름을

애초 철거 당시 비구협이 애린원 쪽에 철거비용에 대한 채권으로 넘겨받은 개는 1040마리였다. 그러나 철거 이후 아롱이와 같이 주변을 맴도는 개들과 포획한 개체, 새로 태어난 새끼들로 그 수는 1651마리까지 늘어났다. 비구협 정기총회에서 발표된 ‘애린원 구조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구조된 개들 가운데 972마리가 현재 포천쉼터에 있다. 나머지는 개인이 임시보호 중이거나 비구협 보은쉼터(충북)에 있다.

“첫 목표는 개체 파악 뒤에 카드 만들기였어요. 기본 토대라도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 거의 시도를 못하고 있죠.” 병원에 다녀왔거나 출산을 한 아이들 위주로 개체카드를 만들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 일반견사의 개들은 시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 끝이 보이려나 싶어요.”

견사 펜스를 넘어 방 이곳 저곳을 누비는 ‘자유로운 영혼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견사 펜스를 넘어 방 이곳 저곳을 누비는 ‘자유로운 영혼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낮 12시. 활동가 두 명과 함께 개체조사를 시작했다. 개체조사는 일반견사 A동부터 시작됐다. 일반견사는 쉼터 중앙에 위치한 병동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서 있다. 노령견, 산모와 새끼들, 아픈 개체들은 보온이 좀 더 잘되는 텐트에서 지내고 대부분의 성견들은 A~E까지 일반견사 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일반견사의 한 구역은 많게는 40개에서 적게는 10개의 방으로 꾸려져 있고, 방마다 5~6마리의 개들이 공간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철제문을 열고 견사로 들어가자 개들이 달려 나왔다. 반갑다고 꼬리 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두어 마리는 두려운 눈빛으로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A섹션 첫 번째 줄의 강아지들은 대부분 작은 소형 믹스견들이었다. 찡찡이, 귀동이 같이 이름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름 없는 강아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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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넘고, 도망치고…쉽지 않은 개체조사

작업은 활동가 두 명이 개들을 한 마리씩 포획해 이루어졌다. 활동가들이 직접 개의 치아 상태를 보고 나이를 추정하고 성별, 중성화 여부 등을 알려주면, 그 사이 애피 기자들이 개의 얼굴 사진을 찍고 정보를 받아적는 식이었다. ‘개체번호 A22-5’. A섹션 2번째줄 2번방의 5번째 개. 1살짜리 암컷 삽살개 믹스 ‘삽순이’의 개체정보다.

비구협 활동가들이 병동에 있던 개체를 합사시키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비구협 활동가들이 병동에 있던 개체를 합사시키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10분이 안 되어 개체조사가 왜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말이 개체조사지 실제로는 술래잡기나 다름없었다. 좁은 견사 안이었지만 개들을 직접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개들은 사람 손에 잡히기라도 하면 금방 목숨을 잃는 것처럼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며 애를 먹였다.

담요로 개들을 진정시키며 작업이 진행됐지만, ‘입질’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이날 두어 시간 진행된 개체조사로 A섹션 세입자 절반의 정보가 업데이트됐다. 겨우 50마리였다. 직접 개들을 상대해야 하는 활동가도 지치고, 애피 기자들도 이렇게 계속 개체조사를 마칠 수 있을지 ‘멘붕’이 온 순간이었다.

그나마 작업이 수월한 개들의 얼굴 사진부터 찍기로 했다. 견사 칸칸이 들어가 개들의 마릿수와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컹컹 짖어대던 진도 믹스견 한 마리가 보란 듯이 철제 펜스를 밟고 옆 칸으로 넘어갔다. 해당 칸의 개체 수가 6마리에서 5마리로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높이 1미터가 훌쩍 넘는 펜스를 넘나드는 일이 녀석에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얘가 담을 좀 잘 넘어요. 저렇게 넘어다니는 녀석들이 종종 있어요. 그래서 방마다 정보가 정확하기가 힘들죠.” 다행히 활동가들은 이 ‘자유로운 영혼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로운 영혼은 월담하는 개들 뿐이 아니다. 쉼터 근처에는 야생화 해 잡히지 않는 아롱이 같은 개들이 주변을 맴돈다. 허술한 울타리도 없이 운영되던 옛 애린원에서 많은 개들이 탈출해 야생화 하거나, 도로로 나와 로드킬을 당했다. 산으로 숨어든 이 개체들은 지금까지 포획되지 않고 쉼터와 불안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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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이 ‘들개’가 되는 비극

유선미 팀장은 2월 현재 이렇게 쉼터 주위에 사는 개들의 개체수를 20여 마리로 추산했다. 비구협은 이런 개들을 위해 쉼터 울타리 주변 곳곳에 사료와 집을 마련해 두고 있다. “애돌이(애린원 떠돌이)들도 사람과 자꾸 만나다 보면 경계를 풀고, 결국 잡혀요. 그렇게 쉼터에 들어온 애들이 선미, 똘똘이예요. 지금은 사람 엄청 좋아해요.”

현재 비구협 포천쉼터 주변에는 근처를 맴돌며 포획되지 않는 유기견 20여 마리가 살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현재 비구협 포천쉼터 주변에는 근처를 맴돌며 포획되지 않는 유기견 20여 마리가 살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2017년부터 애린원 해체를 주도해 온 비구협 유영재 대표는 애린원이 사설유기견 보호소가 잘못 관리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예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에 의해 버려진 유기견이 잘못된 보호소로 들어와 무분별한 번식을 하고, 불어난 개체 수 탓에 결국 야생화 한 것이죠.”

2017년 11월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서울시의 유기견 신고·출동 건수는 최근 4년간 3배가 증가해 하루 평균 15건의 신고가 발생했다. 유기견이 떼를 지어 위협을 가한 경우도 2017년 한 해만 391건으로 나타났다. 동물단체들은 반려견이었던 개들이 도심 야산 등에 버려지며 야생화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들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롱이는 볕 잘드는 쉼터 구석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의 손을 거부하고 너무 영리해진 아롱이도 언젠가 포천쉼터의 떳떳한 세입자가 될 수 있을까.

※2회에서는 포천의 겨울을 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과 보호소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포천/김지숙 기자, 권혜성 최영은 교육연수생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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