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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본능 깨어날 그 날까지…“괜찮아, 달려도 돼”

등록 :2020-08-29 09:59수정 :2020-08-3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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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여수 보신탕집에서 구조된 다섯 마리의 개들
씩씩한 럭키 따라 산책 나가서 뛰놀 날 올까
지난 7월 여수 한 보신탕집에서 구조된 개 ‘럭키’. 럭키는 생애 첫 산책에서 넓은 잔디밭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신났다.
지난 7월 여수 한 보신탕집에서 구조된 개 ‘럭키’. 럭키는 생애 첫 산책에서 넓은 잔디밭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신났다.

럭키는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산책을 나왔다. 더봄센터 중앙정원에 도착해 넓은 잔디밭을 앞에 둔 럭키는 당황한 듯 어리둥절해 했다. 한동안 망설이던 럭키는 ‘킁킁’ 냄새를 몇 번 맡더니 곧바로 땅을 박차고 뛰었다. 바람을 가르며 잔디밭 구석구석을 누비는 럭키는 무척 신나 보였고, 나중에는 자신감 넘치는 개들만 한다는 뒷발 차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자유의 땅을 누린 럭키는 정말 근사하고 신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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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 집에서 구조된 다섯 마리의 개

럭키는 친구 데이와 함께 구조됐다. 개들은 올해 7월 초복 전까지만 해도 여수의 한 보신탕집 뒤편 1m 남짓한 줄에 묶여 지냈다. ‘개를 때려죽여 탕으로 끓인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 보신탕집이었다. 보신탕집 주인 부부는 다른 개들은 뜬장에서 길렀는데, 럭키와 데이만큼은 예뻐하는 눈치였다. 가게 뒤편의 산자락에 개들을 매어놓고 이따금 들여다보는 듯했다.

럭키와 데이는 보신탕집 주인 부부가 예뻐하는 눈치였다. 두 마리는 사람의 손길을 좋아했다.
럭키와 데이는 보신탕집 주인 부부가 예뻐하는 눈치였다. 두 마리는 사람의 손길을 좋아했다.

한편 뜬장에서 길러지는 나머지 개들의 사정은 훨씬 나빴다. 썩어서 구더기가 핀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는 점은 럭키와 데이와 다를 것 없었지만, 개들은 사람이 무서워 벌벌 떨며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으로부터 거칠게 다뤄졌거나 눈앞에서 다른 개가 학대받는 장면 등을 목격한 듯했다. 뜬장 근처에는 그을린 흔적이 역력한 기구들과 털 뽑는 기계, 큰 솥단지가 있었다.

구조 전 보신탕집 뜬장에 갇혀있던 낭도. 낭도는 사람과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구조 전 보신탕집 뜬장에 갇혀있던 낭도. 낭도는 사람과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구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우선은 뜬장에 있었던 개들의 소유권을 받아냈다. 낭도와 오동이, 돌산이라 이름 지은 세 마리였다. 개들은 구조의 손길에도 패닉되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머리를 땅으로 처박았다. 눈도 못 마주치고,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하는 모습에서 공포와 무력함이 느껴졌다. 하필 비도 추적추적 내려 개들의 털은 빗물과 진흙으로 젖어 더 처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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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장의 개들은 문밖이 무섭다

“괜찮아, 뭐가 무서워, 이제 괜찮아.” 개들을 어르고 달래는 시간 끝에, 결국 개들을 이동장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이동장 안에 들어간 개들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이동장 안에서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눈을 마주치는 개들은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겁쟁이 세 마리는 그 날 다섯 시간을 달려 더봄센터의 격리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1차 구조 당시 낭도 모습. 이동장에 들어가는 일도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1차 구조 당시 낭도 모습. 이동장에 들어가는 일도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럭키와 데이를 데려온 2차 구조. 얼마 전 만났던 사람들이란 걸 기억하는 눈치였다.
럭키와 데이를 데려온 2차 구조. 얼마 전 만났던 사람들이란 걸 기억하는 눈치였다.

2차 구조로 럭키와 데이를 데려오는 일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진행됐다. 럭키와 데이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주인 부부를 계속해서 설득한 결과였다. 초복을 앞두고 혹여나 목숨을 잃을까 초조한 마음이었는데, 여수에서 다시 만난 개들은 여전히 신나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줬다. 얼마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동장은 낯설고 무서워했기에, 둘 다 어르고 달래서야 구조를 완료할 수 있었다.

뜬장에서 자라거나 짧은 줄에 묶인 채 자라는 개들, 사람에 의해 학대당한 개들은 구조 이후의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고비다. 단 몇 걸음의 세상 속에 갇혀 살아온 개들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문을 나서는 것조차 모두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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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아닌 개로 살아가는 연습

개들을 보신탕집에서 구조한 지 50일이 가까워간다. 그간 개들은 저마다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오동이와 돌산이는 아직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테라스에 나가 바람을 느끼고 몸을 푸는 것에 익숙해졌다. 견사 구석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얼어있던 모습을 생각하자면 무척 기특한 성장이다. 게다가 오동이는 최근 사람을 보고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게 됐다!

테라스를 사랑하는 낭도의 최근 모습. 사람을 무서워하던 낭도가 이제는 놀고 싶다고 문을 뻥뻥 차대고 짖는다.
테라스를 사랑하는 낭도의 최근 모습. 사람을 무서워하던 낭도가 이제는 놀고 싶다고 문을 뻥뻥 차대고 짖는다.

너무 겁이 많았던 낭도는 이제 사람을 보면 놀고 싶다며 문을 뻥뻥 차대고 짖는다. 절친한 친구 ‘왕발이’ 덕이다. 최근 낭도는 산책 연습을 위해 하네스를 착용했는데, 조금 얼어있다가 왕발이를 슬쩍 보더니 용기를 내 걸음을 뗐다고 한다. 아직 산책하러 못 갔지만 좋은 사람들과 왕발이와 함께라면 곧 산책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견사를 쓰는 럭키와 데이는 힘을 합쳐서 활동가의 얼굴이나 팔을 핥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곤 한다. 단짝인 둘이 유일하게 떨어지는 시간이 럭키의 산책시간이다. 아직 하네스를 무서워하는 데이는 산책을 나가는 럭키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본다. 마치 “나가도 되는 거야, 정말?”하는 얼굴이다.

데이는 아직 산책이 두렵다. 씩씩한 럭키에 의지해 어서 개로서의 본능을 되찾을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데이는 아직 산책이 두렵다. 씩씩한 럭키에 의지해 어서 개로서의 본능을 되찾을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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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뜀박질의 시간 머지않았으면…

용감하고 씩씩한 럭키에게 의지해 데이도 곧 산책하러 나가게 될까. 겁쟁이 오동이와 돌산이, 낭도도 산책하러 나가자고 조르는 날이 올까. 마음껏 뛰고 싶다는 본능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억압된 개들이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뜀박질을 할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개 친구들과 신뢰하는 활동가의 존재를 용기로 삼는다면, 어쩌면 생각보다 그 날은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글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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