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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지 못하고 어찌 즐겁게 하겠는가

등록 :2011-09-29 10:29수정 :2011-09-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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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타 마코토의 제안으로 세계적인 재즈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는 함께 연주했던 옛 멤버를 모아 ‘아트 블레이키 &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 스페셜 앨범을 리코딩했다.
기마타 마코토의 제안으로 세계적인 재즈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는 함께 연주했던 옛 멤버를 모아 ‘아트 블레이키 &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 스페셜 앨범을 리코딩했다.
[esc] 커버스토리

① 세계적인 재즈 프로듀서 기마타 마코토, 전설의 재즈맨 아트 블레이키와 만나다
기마타 마코토(68). 1970년대부터 40여년 동안 재즈 음반 500여장을 제작·발표한 일본의 세계적인 프로듀서이다. 아트 블레이키, 케니 드루, 쳇 베이커 등의 앨범을 제작했고,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를 직접 발굴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재즈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서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재즈 음반만 고집스럽게 만들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연필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섰다. 지난 40여년간 유명 재즈 음악가들과 만나 음반을 제작하며 겪은 일화를 그가 직접 소개한다. ‘재즈는 편안한 선율’임을 강조하는 기마타 마코토. 선율과 함께하는 가을 여행이 더욱 편안해지도록 이제 그가 다섯 차례에 걸쳐 길을 안내한다.

재즈에 내가 처음으로 매혹을 느낀 것은 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를 초등학교 때 만나면서부터였다. 아름다운 멜로디, 즐거운 리듬, 매력적인 하모니…. 이런 사운드에 완전히 빠졌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것을 계기로 베니 굿맨,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등 당시의 유명한 빅밴드를 가리지 않고 들었다.

초등학교·중학교 친구 중에 레코드가게집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가게 창고에 몰래 들어갔던 일이 있다. 안에는 많은 레코드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재즈 레코드도 몇 장인가 찾을 수 있었다. 제리 말리건, 쳇 베이커, 아트 블레이키, 클리퍼드 브라운, 맥스 로치 등 당시의 쟁쟁한 뮤지션들과의 만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현재의 재즈 프로듀서의 출발점이 아니었나 한다. 그들이 대단한 재즈 뮤지션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레코드를 다 갖고 싶었지만 물론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겨우 한 장을 산 것이 <브라운과 로치의 베이슨 스트리트>(CLIFFORD BROWN and MAX ROACH at Basin Street)였다.

다 갖고 싶다! 여기서 악동 기질이 전개됐다. 당시 나는 야구 소년이었고 투수에 4번 타자였다. 레코드점 아들도 같은 팀이었다. “다음 시합 때 4번 타자 양보할 테니까 레코드하고 교환하자.” 친구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4장의 레코드를 손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소년 야구는 아이들끼리 결성을 해서 감독이나 지도자도 없이 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든 내 마음대로였다. 지금은 시효가 지나서 어둠의 뒷거래도 밝힐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다.

당시는 흑인 재즈와 백인 재즈가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트 코스트는 흑인이 우세했고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 코스트는 백인 지역으로 명확하게 갈려 있었다. 흑인 재즈의 리더로는 디지 길레스피, 아트 블레이키, 맥스 로치, 호러스 실버, 백인 리더로는 제리 말리건, 쳇 베이커, 빌 퍼킨스 등이 활약을 하면서 재즈계를 이끌었다. 그 이후 흑인 뮤지션들이 서서히 세를 넓히게 되면서 웨스트 코스트를 압도하게 된다. 그 선두에서 활약을 한 것이 ‘아트 블레이키 & 재즈 메신저스’였다.

4번 타자 양보하고 손에 넣은 재즈 레코드판


1954년 아트 블레이키는 호러스 실버와 만난다. 그리고 클리퍼드 브라운, 루 도널드슨, 컬리 러셀과 새로운 퀸텟을 결성한다. 바로 이 그룹이 재즈 메신저스 탄생의 실제 계기가 되었다. 그 뒤 몇 번의 멤버 교체를 거쳐 1958년부터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세계 제패가 시작된다.

리더인 아트 블레이키의 목표는 젊은 뮤지션을 기용하고 육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트럼펫의 리 모건이나 피아노의 바비 티먼스, 테너색소폰의 베니 골슨, 웨인 쇼터 등을 기용하면서 재즈 메신저스로서의 길을 확실하게 다져 나갔다. 1958년 펑키재즈 붐의 발화점이 된 곡인 ‘모닌’(Moanin)을 ‘블루노트’에서 리코딩했는데 발매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즈 메신저스가 만들어내는 멋진 멜로디에 열광하게 되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사이러스 체스트넛과 다정한 포즈를 취한 기마타 마코토.
재즈 피아니스트 사이러스 체스트넛과 다정한 포즈를 취한 기마타 마코토.
내가 블레이키와 처음 만난 것은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982년이다. 재즈 메신저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10년 이상 질풍같이 세계를 누비며,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펑키 붐은 그리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일렉트릭 사운드, 퓨전뮤직이 등장하자 인기는 나날이 떨어져 갔다. 그래도 블레이키는 오로지 자신의 길만 걸어갔지만, 재즈 메신저스한테 1970년대는 암흑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 유행의 바람이 변하면서, 재즈 메신저스한테도 적잖은 순풍이 불어왔다. 블레이키는 또다시 적극적으로 젊은 신인을 기용하기 시작한다. 윈턴 마살리스, 테런스 블랜차드, 케니 개릿 등의 활약이 돋보였다. 내가 블레이키와 만난 것은 바로 그런 시기였다.

예전의 기가 막힌 연주를 잊을 수 없었던 나는 어느 날 리코딩 작업을 하면서 베니 골슨에게 제안했다.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 편성으로 앨범 1장만 스페셜 에디션으로 프로듀스 하고 싶은데. 혹시 도와줄 수 없을까요?” 그 뒤 베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블레이키가 ‘재밌는 기획이다, 꼭 하자’고 합니다.” 나는 다른 멤버들은 어떨지 물었다. “다들 바쁜 녀석들이지만, 아트(블레이키)가 하자고 하면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베니는 자신한테 맡기라고 했다. “내가 멤버들 스케줄은 조정할게요.” 이렇게 해서 1982년 4월 드디어 뉴욕의 에이앤아르(A&R)스튜디오에서 리코딩 작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음악감독은 베니 골슨. 앨범 타이틀은 <아트 블레이키 &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로, ‘Moanin’, ‘City Bound’, ‘Blues March’, ‘Night in Tunisia’ 등이 실렸다.

도쿄에서 만난 아트 블레이키, 사고로 죽은 클리퍼드 못 잊어

아트 블레이키의 당시 첫인상은 지금도 강렬하다.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가면서 전원에게 최고의 연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강한 집념의 모습이 지금도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리더란 어떤 것인지 그 전형을 아트 블레이키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됐다. 그래서 3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재즈 메신저스의 역사를 쌓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아트 블레이키도 일을 떠나서는 자애로움이 가득하고 재치가 넘치는 성품이었다.

1984년 겨울, ‘아트 블레이키 &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 팀은 일본 투어를 위해 도쿄에 체류하고 있었다. 2월의 어느 날, 그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커피숍에서 베니 골슨과 그의 다음 리코딩에 대해 미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트 블레이키가 말을 건네왔다. “합석해도 될까요?”

그와의 이야기가 무르익어, 예전 이야기나 지금까지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일들, 이번에 특별 편성한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에 관한 얘기 등을 한 시간 이상에 걸쳐 들을 수 있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죠?” 내가 물었다. “클리퍼드(클리퍼드 브라운)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클리퍼드와는 언젠가 함께 그룹을 결성할 생각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어요. 그 뒤 리 모건이나 프레디 허버드 등 훌륭한 트럼펫 연주자가 나왔지만 그들의 롤모델은 브라운이었어요.” 블레이키는 쓸쓸하게 말을 이었다.

당시 리코딩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주 즐거웠어요. 모두가 메신저스 출신이고 지금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라 음악이 환상적인 것은 당연하겠죠. 게다가 연주를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다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연주하는 사람이 즐기지 못하는데 듣는 사람이 즐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재즈의 에센스랍니다. 생큐, 기마타!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꼭 리코딩 합시다.”

글 기마타 마코토/재즈 프로듀서·사진 제공 컨텐츠팩토리



열린 마음으로 뮤지션 알아보는 심미안
기마타 마코토는 누구?…‘유러피언 재즈 트리오’ 발굴·재즈 음반 500장 제작

윤희정 제공
윤희정 제공
“그분이 프로듀싱한 음악가들의 면면도 대단하지만, 기마타 마코토씨의 겸손함은 잊을 수가 없지요.”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은 기마타 마코토와 2008년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줄리어드 재즈 올스타’와의 협동 공연에 이어, 2009년 카럴 불레이 트리오 공연을 통해서였다. 기마타 마코토가 이들의 음반을 제작한 데서 출발한 공연이었다. 윤희정(사진)의 20여년 재즈 인생에서 보면, 그 후반기에 기마타 마코토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그는 아주 어린 학생처럼 재즈 음반 제작의 거장을 우러러본다. “음반, 그것도 재즈 음반을 500여장이나 제작하신 분이잖아요. 수백명의 재즈 음악가들의 독특함, 개성을 꿰뚫는 능력이 있는 거죠. 국적은 일본이지만 재즈 본고장인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수많은 음악가를 발굴해왔거든요.”

32년 동안 재즈 음반을 제작해 온 사람과 한국 재즈 보컬리스트의 관계는 다소 사무적이거나 계산적일 법하지만 윤희정은 정작 재밌는 사람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공연 전 리허설 때나 무대 밖에서 식사를 함께 할 때 느꼈는데, 사람을 굉장히 편하게 해주시는 재주가 있어요. 음반을 제작하는 분으로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예민한 부분은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전혀 거리감이 없었죠.”

지난 21일 한국 공연을 마친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는 기마타 마코토와 인연이 더욱 깊다. 1990년 이들 그룹의 발굴과 첫 앨범 제작을 기마타 마코토가 진행했다. “그는 유럽의 젊은 재즈 트리오를 찾고 싶어했죠. 그와 함께 첫 앨범 <노르웨이의 숲>을 만들었고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 공연을 하러 일본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어요.” 이제 벌써 그들이 데뷔한 지도 22년째이지만, 그와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21일 한국 공연을 마치고 일본에 가서 기마타 마코토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들이 이처럼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데는 역시 기마타 마코토의 성품이 영향을 미쳤다. 이 트리오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프란스 판 데르 후번은 “그는 모든 음악 장르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자세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서로 영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성향의 음악가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품이 창의적인 발상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가 재즈 클래식에 다가서게 된 계기도 기마타 마코토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마타 마코토가 없었으면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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