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경전철. 용인시 제공.
용인경전철. 용인시 제공.

대법원이 용인경전철 사업에 관여한 지방자치단체장(시장)과 지자체 공직자, 국책연구기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주민소송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2005년 주민소송 제도가 도입된 뒤 지자체가 시행한 민자사업을 주민소송 대상으로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주민소송을 통해 해당 사업을 진행한 전·현직 자치단체장과 공무원에게 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지자체는 추가로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세금 낭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선거를 겨냥해 무분별하게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선심성 사업을 벌이는 지자체장의 행태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0월 용인시민 8명은 전직 용인시장 3명(이정문·서정석·김학규)과 경전철 사업에 관여한 전·현직 공무원과 시의원, 경전철의 수요예측조사를 담당한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 등 34명을 상대로 주민소송을 냈다. 청구한 배상금액은 1조32억원이었다. 주민소송은 지자체 재무회계 업무에 한해 주민에게 원고 자격을 부여하는 공익소송 제도다. 지자체가 불법적인 일에 세금을 썼다면, 주민은 주민소송을 제기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용인경전철 주민소송에 참여한 주민들은 특히 사업 당시 최종 의사결정 책임자였던 이정문 전 시장이 공사비를 과다하게 투입하고 캐나다 회사인 봄바디어(봉바르디에) 한 곳만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점을 들며 세금을 낭비했다고 주장했다.

2017년 9월 항소심은 김학규 전 시장 정책보좌관 박아무개씨의 책임만 인정해 10억25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박씨가 경전철 사업과 관련해 국제중재 재판을 받게 된 용인시를 대리할 법무법인 선정에 개입해 용인시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다른 전직 시장이나 한국교통연구원 등의 책임은 주민소송에 앞서 진행된 주민감사 청구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각하’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29일 “주민소송의 대상이 주민감사를 청구한 사항과 관련이 있으면 충분하고 반드시 동일할 필요는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전 시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실시협약 체결과 관련이 있는 모든 적극적·소극적 행위들을 살펴보고 법령 위반 등의 잘못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요예측 조사를 한 한국교통연구원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재무회계 행위’와 관련됐다고 보고 주민소송 대상이 된다고 봤다.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의 책임을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로 따져보라는 것이다. 추가 심리를 통해 항소심이 인정한 10억2500만원보다 배상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조원이 넘게 투입된 용인경전철은 토착 비리로 건설된 부산물이었다. 1996년 3월부터 사업성 검토에 들어간 용인경전철 사업은 이정문 시장(2002~2006년) 때부터 탄력이 붙었다. 2004년 용인시 의뢰로 교통수요를 예측한 교통연구원은 하루 평균 이용객을 16만1천명으로 추산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원들이 사업 제안자였던 봄바디어 컨소시엄의 교통수요 예측 용역업체로부터 기·종점 통행량 분석 자료를 사적으로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용인시가 2010년 경기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수요를 다시 예측한 결과 하루 평균 3만2천명에 불과했고, 실제 지난해 용인경전철 하루 평균 이용객은 3만3079명으로 최초 수요 예측의 18%에 그쳤다.

이 전 시장은 2004년 시의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1일 승객 수요 15만3천명을 기준으로 90%의 운영수입을 보장해 주는 내용이었다. 시의회 등의 감시기능은 전무했다. 실시협약 전인 2003년 7월부터 3차례에 걸쳐 시의원·언론인 등 37명이 봄바디어 쪽으로부터 경비를 지원받아 캐나다 등으로 골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전 시장 등은 교통수요 예측을 부실하게 진행하고, 차량기지 공사 하도급을 자신의 동생과 측근이 운영하는 회사에 주고 측근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복역(징역 1년)하기도 했다.

김학규 시장 시절인 2010년 11월에는 경전철 준공검사를 반려하면서 계약 해지로 이어졌고 국제중재재판소까지 가게 돼 시는 민간투자비 5158억원과 기회비용 2627억원 등 7785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그 뒤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사업계약을 변경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적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필수 기자, 용인/이정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