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가 지난 2월 동물판매업체 31곳을 조사한 결과, 강아지가 뒷발로 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판매되는 강아지들도 많았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2월 동물판매업체 31곳을 조사한 결과, 강아지가 뒷발로 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판매되는 강아지들도 많았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당신이 강아지를 분양받기 위해 펫숍을 갔다고 상상해보라. 어떤 강아지를 사서 함께 살지 살펴보면서 고른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유기견을 입양하라!)

펫숍에서는 이 강아지가 태어난 지 두 달 이상 지났다는 것과 매매계약서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게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이 강아지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산·수입업자 업소명 및 주소가 매매계약서에 적혀 있어야 한다. 동물보호법은 펫숍 같은 동물판매업자가 이러한 ‘영업자의 준수사항’을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기서 판매되는 강아지는 불법 번식장에서 대량 생산되지 않았으며, 어미 품을 너무 빨리 떠나 팔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펫숍이 보증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입양자도 이 정보를 확인하고 동물복지 원칙을 심하게 훼손하지 않은 생산·판매업체에서 강아지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2월 서울 중구 충무로, 부산 진구 양정동, 수원 팔달구 남문의 펫숍 밀집지역의 19개 업체와 전국에 지점을 둔 업체 등 모두 31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모든 업체가 동물보호법상 ‘영업자의 준수사항’과 ‘시설 및 인력 기준’을 1개 항목 이상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자유연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0 동물판매업 동물보호법 이행 실태조사’ 보고서를 10일 공개했다.

동물자유연대는 매매계약서 제공 의무를 게시하지 않은 업소가 태반이었고, 동물 생산·수입업체 등의 정보도 게시하지 않은 업체가 대다수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위반 사례를 살펴보면, △계약서 제공 의무 미게시 23곳 △요금표 미게시 7곳 △계약서상 동물생산업 정보 미기재 6곳(11곳은 확인 불가) 등이었다.

특히 동물 생산업체를 알려고 해도 동물 구매 의사가 있을 경우에만 알려주겠다는 업체가 많아 입양자가 사전에 이를 판단할 여지가 적다는 것도 문제였다.

정리되지 않는 사육 환경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양이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정리되지 않는 사육 환경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양이들. 동물자유연대 제공

일부 업체는 동물이 뒷발로 딛고 일어섰을 때 머리가 닿을 정도로 사육 환경이 열악했다. 환기가 제대로 안 되고 담배꽁초가 가득한 환경에서 동물을 판매하는 업체도 있었다고 동물자유연대는 밝혔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강아지를 진열해 예약을 받는 등 2개월 미만의 동물을 판매하는 경우도 부산에서 2곳 등이 확인됐다.

지자체는 매년 동물판매업체가 영업자 준수사항을 이행하는지 점검하게 되어있다. 동물자유연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해 지자체의 점검 결과를 살펴보니, 서울 중구는 13개 업체 중 1곳, 수원 팔달구는 23개 업체 중 8곳이 기준을 위반했다. 부산 진구는 42개 업체를 점검했으나, 단 한 곳도 위반 사례를 적발하지 못했다. 이번 조사 결과와는 딴판이었던 것이다. 동물자유연대는 2019년에도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당 지자체에 재점검을 요청해 시정 조처가 이뤄졌다며, 이번에도 재점검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 김지원 활동가는 “판매업 현장에서는 동물보호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다”며 “영업정지에 불과한 솜방망이 행정처분을 넘어 동물보호법 미준수에 대한 법규를 강화하고 지자체의 철저하고 책임 있는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