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7년 동안 자신의 모든 강의를 토론과 글쓰기 방식으로 해왔다. 그가 미리 토론 주제와 강의 자료를 올리면 학생들은 수업 전에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해 올리고 다른 수강생들이 쓴 글도 읽고 평가해야 한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3명씩 조를 짜 토론한다. 학생들이 한 동료 평가는 성적에도 직접 반영한다.

지난 31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자신의 수업 방식이 느리지만 점차 서울대 안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동료 교수나 강사 열 분 정도가 제 방식을 수업에 쓰고 있어요. 저도 맡은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글쓰기 2:사회과학 글쓰기’ 5개 수업도 제 방식으로 하고 있죠.”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표지.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표지.

지난해 임기 2년의 한국창의성학회 회장도 맡은 박 교수는 최근 책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쌤앤파커스)를 펴냈다. 주장이 담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료 수집부터 퇴고까지 세세한 조언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자다. 어떻게 ‘글쓰기와 토론 교육 전도사’가 됐을까? “인지심리학의 주요 관심사가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고 활용하는가’입니다. 이는 교육의 영역이기도 해요. 서울대에 앞서 세종대 교육학과에서 10년 재직했어요. 그때 초중고 교육을 바꾸려고 평가 시스템 개선 연구를 많이 했었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초중등 교육은) 꿈쩍 안 하더군요. 생각을 바꿔 제가 있는 대학에서 먼저 시작하자고 맘먹었죠. 보통 대학 교육을 바꾸자고 하면 초중등 교육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렇게 남 탓만 하지 말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바꾸자는 거죠. 대학은 이런 변화를 시도할 여지가 충분해요.”

주입식 강의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토론과 글쓰기 수업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학생들은 교수가 기대하면 다 따라옵니다. 초기에는 수강 신청자의 절반 정도가 중도에 나갔어요. 그 뒤로 저도 수업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낮추고 학생들과 서로 도와 지금까지 왔죠. 이번 글쓰기 책도 수강생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어 냈죠.”

그가 하는 수업의 큰 특징은 학생들의 동료 평가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왜? “타인의 글을 평가하기 위한 사고 훈련이 학생들의 글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평가하기는 비판과 창의성을 활성화하고 우리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성과를 되돌아보게 하는 활동이기도 해요. 능동적인 학습 태도도 갖게 하죠. 동료 학생들의 평가를 성적에 반영하는 데 간혹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필요하면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하기도 해요.”

그는 대학원 전공과목에서도 글쓰기 교육을 한다. 글쓰기 교육을 교양 과목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미국 엠아이티(MIT) 대학에서 1980년대 중반 졸업생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했을 때 응답자들이 학교에 가장 바란 게 글쓰기 교육 강화였어요. 이 때문에 엠아이티는 90년대부터 학부생에게 전공과 연계된 글쓰기 과목을 최소 4개 이수하도록 했죠. 4학점이면 전공 2학점·글쓰기 2학점 이렇게 연계합니다. 이 대학 글쓰기 전담 교원이 60명인데 그 절반이 전공 글쓰기 전담입니다. 양질의 글쓰기 교육을 위해 대학이 꽤 큰 투자를 하고 있어요.”

7년간 모든 강의 토론·글쓰기로
학생들 동료 평가도 성적에 반영
“강의는 학습 효과 크지 않아
홀로 공부하고 토론 때 가장 커
전공 과목도 글쓰기 가르쳐야”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출간

그가 보기에 지금 한국 교육은 중고교나 대학 모두 지식 전달에만 치우쳐 있다. “지식과 사고력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우리는 지식만 있어요.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만 키우고 있는 거죠. 깊이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 교육 탓에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의미 안에 녹여내지 못해요.” 그는 사고력 확장을 위한 토론과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박식하기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가장 쓸모가 없다’고 했어요. 공자도 <논어> 위정편에서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죠. 입신양명만 바라고 달달 외워 고시에 붙은 사람보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가야 새로운 시도도 해서 나라가 잘되지 않을까요.” 그는 창의력도 사고력이 전제해야 나온다면서 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강의를 듣고 복습한 집단과 강의를 듣고 토론한 집단 그리고 혼자 공부하고 토론한 집단에서 어느 쪽 시험 성적이 가장 좋을까요? 답은 혼자 공부하고 토론한 집단입니다. 교수의 일방적 강의는 학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글쓰기는 내용 지식 습득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는 토론과 글쓰기 교육을 주제로 외부 강연도 활발하게 한다. “그동안 국내 15개 대학에서 강연했어요. 수학교사들 한마당 행사에서 기조강연도 했죠. 그런데 강의 때마다 재밌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나도 활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없더군요. 놀라운 일이죠. 교육계도 두드렸지만 별 반응이 없었어요. 사실 강의만 하면 강사나 학생 모두 편하거든요.”

하지만 희망의 싹도 보인단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제 방식을 쓰면서 관심을 보이는 교수들이 늘었어요. 이번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도 문의하는 교수들이 많아요. 앞으로 제 수업 방식을 소개하는 강연 등의 기회가 많아질 것 같아요.”

그는 이번 1학기에 어쩔 수 없이 도입한 비대면 동영상 강의에서도 글쓰기와 토론 교육은 그대로라고 했다. “동영상 강의를 지원하는 줌 프로그램의 소회의실 기능을 사용해 학생들이 3명씩 토론합니다. 교육 효과 측면에서 대면 강의랑 별 차이가 없어요.”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제 수업을 들을 때는 힘들어하지만 끝나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반응 때문에 지금까지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더 많은 대학에서 토론과 글쓰기 수업 방식이 활성화되어야 우리 교육이 제자리를 찾아갈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