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 권력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 권력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기현 전 울산시장 동생과 비서실장 등 측근비리 의혹에 대한 지난해 울산경찰청 수사가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이 일면서 당시 경찰 수사와 검찰의 불기소 처분 경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 전 시장과 측근들을 둘러싼 출처 불분명한 돈의 흐름과 골프접대 정황, 석연치 않은 인허가 결정과정 등 경찰 수사를 통해 적지 않은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끝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을 두고 지역에선 수사권 조정의 ‘아이콘’인 황운하 당시 울산청장의 부임 이후 극에 달한 검·경 갈등이 한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시장 동생에 대한 경찰 수사는 그가 2014년 3월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신축사업과 관련해 건성업자 김아무개씨와 당시 선거를 앞두고 있던 김 전 시장이 당선되면 담당공무원에게 청탁해 사업시행권을 따게 해주는 조건으로 30억원을 받기로 약정한 혐의(변호사법 위반)와 관련됐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거쳐 지난해 12월 김 전 시장 동생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울산지검에 최종송치했으나 검찰은 지난 4월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기소처분했다.

김 전 시장의 박아무개 비서실장은 2016년 4월 울산시 고위공무원 이아무개씨를 통해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 특정 레미콘업체가 물량을 납품할 수 있도록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하고 골프 접대를 받은(뇌물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그도 경찰이 지난해 12월 검찰에 최종 송치했으나 지난 3월 증거불충분 등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울산지방경찰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울산지방경찰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김 전 시장 동생에 대한 경찰의 기소의견과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갈라서게 된 것은 김 전 시장 동생과 건설업자 김씨의 약정이 담긴 ‘사업관리 용역계약서’의 해석에 있다. 또 이들 사이를 연결한 중요 참고인 2명이 검찰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

참고인들이 진술을 번복함에 따라 김 전 시장 동생이 ‘김 전 시장의 힘을 등에 업고 아파트 신축사업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력이 약해진 것이다. 경찰은 형식적인 계약서 문구 안에 숨어있는 이면계약을 강조했으나 검찰은 “용역계약서의 문언해석상 가능한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특히 경찰은 김 전 시장 동생이 뒤에 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과 관련해 김 전 시장 형이 다른 건설업체의 아파트 사업에 개입한 것과 연관돼 있으며, 이 시기 이들의 계좌에 출처불명의 큰 돈이 입금되고 이중 일부가 김 전 시장 선거 캠프에 흘러간 정황까지 찾아냈다. 이 아파트 사업은 당시 울산시 도시기본계획상 승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김 전 시장 취임 뒤 울산시 도시계획심의위 조정결정을 통해 전격 승인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불법성이 확인된 것이 아니고, 김 전 시장 동생의 혐의와 관련성도 분명하지 않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김 전 시장 동생의 혐의를 방증할 만한 여러 관계자들 진술의 신빙성마저 배제한 채 사실상 김 전 시장 동생의 진술만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을 했다”고 항변했다. 한 건축·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시장에게 일정한 직업이나 면허도 없었던 걸로 아는데 아파트 사업 관련해 용역계약을 한 것 자체가 변호사법 위반의 소지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울산지방검찰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울산지방검찰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김 전 시장 형과 관련된 업체의 사업승인은 실제 성공한 청탁이자 거액의 대가가 지급됐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재수사 지휘과정에 이와 관련한 불법 여부에 대한 보완수사를 주문하고도 관련 경찰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영장은 기각해 수사를 무력화했다”고 털어놓았다. 울산지검은 불기소결정서를 통해 "(경찰 수사 결과가) 증거재판주의를 책택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법상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며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박아무개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경찰이 ‘부당한 압력 행사’로 지목한 데 대해 “지역 업체의 하도급을 권장하는 조례에 따라 현장소장을 불러 이야기하는 것은 직무권한 내의 행위”라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이 ‘당시 시장 비서실장과 고위공무원이 특정 레미콘업체의 민원 해결에 적극 나선 경위’에 초점을 맞춘 혐의를 검찰은 ‘조례에 따른 직무행위’를 이유로 배제한 것이다.

검찰은 비서실장 등이 레미콘업체 대표의 골프접대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골프경비를 대납해주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 업체 대표는 김 전 시장이 당선됐던 2014년부터 정치자금을 후원해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른바 ‘쪼개기’ 방식으로 상당한 금액을 후원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이미 검찰이 기소한 바 있다. 경찰은 “검찰이 업체 대표와 김 전 시장과의 이런 특수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울산지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같이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한 기소 여부를 둘러싼 경찰과 검찰의 갈등은 경찰의 사건 송치 이후 검찰의 수사 재지휘과정에서도, 불거져 검찰은 검찰은 최종적으로 ‘혐의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라고 지휘하고, 이에 맞서 경찰은 “수사기관 의견에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기소기관의 몫”이라며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며 버텼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2일 “김 전 시장 동생과 비서실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은 2014년 김 전 시장의 선거출마 이후부터 지역에서 이미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고 지난해 이전에도 검·경이 각각 내사를 해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이날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김 전 시장 측근 첩보는 여러 경로로 진행된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내사 착수를 안 하면 더 이상한 것”이라며 “첩보 중 일부는 수사를 했고 수사 대상이 아니라 제외한 것도 있다. 이 사건이 하명수사 구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역 법조계의 한 인사는 “경찰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주장해온 황운하 울산경찰청장 부임(2017년 8월) 이후 ‘고래고기 환부’(경찰이 불법 포경의 증거물로 압수한 밍크고래고기의 상당량을 검찰이 기소단계에서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준) 사건으로 검경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김 전 시장 측근비리 수사와 기소에도 그대로 이어진 형국”이라며 김 전 시장 측근을 둘러싸고 나도는 의혹들이 이대로 묻혀지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신동명 정환봉 기자 tms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