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문은 소송은 승소 확률이 90%가 넘을 때 진행해야 유리하며
헤문은 소송은 승소 확률이 90%가 넘을 때 진행해야 유리하며

혜문(45·본명 김영준.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은 자칭 타칭 소송 전문가다. 1998년 출가했다가 2015년에 환속한 조계종의 유명 승려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등 나라의 혼란한 상황을 틈타 불법 반출된 문화재 환수 운동을 하면서 붙여진 자랑스러운 ‘이름표’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대한제국 국새가 제자리를 찾았다. 2005년 친일파 후손의 내원암(봉선사 말사) 사찰 부지 약 15만8677㎡(4만8천여평. 20억원 상당) 반환 소송에 위헌 심판을 청구해 이를 무력화시켰을 뿐 아니라 친일파재산환수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4년부터 최근까지 170여건에 이르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소장과 준비서면을 쓰는 일을 직접 챙겼다. 그에게 소송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었다.

170여건 소송 진행한 혜문그의 조언 들어보니나 홀로 소송 중요한 경험 돼 판사 앞, 절제된 언어로 말하기 중요

―소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은사인 철안 스님이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 주지여서 그곳에 적을 뒀다. 경기 북부를 관할하는 사찰로, 말사가 80개다. 사찰들에 관한 자료를 접하다 한국전쟁 이후 엄청난 양의 토지를 잃었다는 걸 알았다. 찾으려 하니 소송밖에 없는데, 변호사를 쓸 형편이 못 됐다. 혼자 공부해서 2004년 직접 소송을 제기한 게 시초다.”

―소송 공부는 어떻게?

“대학 다닐 때 법학 과목을 수강한 게 도움이 됐다. 특정 분야에 대한 공부는 열심히만 하면 다 습득할 수 있다. 당시 소송으로 시가 100억원 상당의 토지를 사찰로 귀속시켰다. 이후 지속적으로 사찰 소유의 토지와 문화재를 찾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됐다.”

―일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소장 쓰는 일이다.

“소장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사자의 입장을 솔직하게, 사실에 기반해서 쓰면 된다. 내가 왜 이 소송의 당사자인지, 나와 상대편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자기 지위와 입지가 명확하면 된다. 그다음은 청구하고자 하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적시한다. 상대편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불법적 행위 여부와 그것이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주었는가를 쓴다. 소장은 짧을수록 좋다. 대신 명확하게 사실관계가 드러나야 한다.”

혜문이 자신이 진행했던 소송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혜문이 자신이 진행했던 소송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혜문의 대표적인 소송 중에는 조선시대 사찰인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의 옛 문화재 반환 소송이 있다. 2004년 문화재청을 상대로 회암사 소유 부지 전체의 출토 유물 등 약 5천여점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이 소송은 사찰이 출토문화재에 대한 권리를 소송을 통해 인정받은 첫 사례로, 매장문화재의 국가 귀속에 대한 결정적인 판례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소송 전문가’ 반열에 올랐는데.

“거의 다 공익소송이다. 문화재 환수 소송처럼 의미 있는 일이니까 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상대로 낸 (일제강점기 제작된) 기생 명월이 생식기 표본 폐기 청구소송도 그렇다. 일제의 만행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를 알렸다. 또 인체에는 소유권이 없으며, 매매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환기시켰다. 1심에서 패소했지만, 결과적으로 표본 폐기를 이끌어냈다.”

―소송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 있나?

“소송은 자기 권익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불의와 부당한 권리침해에 항거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도 비겁하게 도망가려고만 한다. 돈과 시간, 귀찮음 등을 이유로 말이다. 소송은 약자의 권리를 온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믿는다.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인 ‘소송’을 잘 활용했으면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야말로 소송에 관심을 가져라?

“정답. 서민을 지켜주는 마지막 수단이다. 두려움과 공포, 비겁함과 나약함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소송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판례가 만들어지고, 그 덕분에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보호되고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혜문이 자신이 진행했던 소송 자료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혜문이 자신이 진행했던 소송 자료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일반인들이 소송을 접할 기회는 드물다. 평생 단 한 건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혜문은 최대한 많은 소송을 접해보라고 강조한다. 그것도 변호사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직접’, ‘스스로’ 나 홀로 소송을 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정과 판사 앞에 서는 것부터 망설여지기 시작한다. 글솜씨뿐 아니라 말주변이 없는 것도 거슬리고, 법정 안에서 떨지 않고 내 주관을 조리 있게 펼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재판정에서 판사 앞에 섰을 때, 기억해야 할 점은?

“소송을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것은 평생 중요한 경험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판 시간이 채 5분도 되지 않는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 짧은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명확하게 하면 된다.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항변조로 장황하게 말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판사가 묻는 말에 절제된 어조로 말하라.”

―소송 진행 시 주의점이 있다면?

“소송했다고 하면 주변에 조언군단들이 몰려든다. 잘 모르니까 이들의 말에 솔깃하기도 하는데, 그릇된 정보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장을 직접 쓰고,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게 중요한 거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근거들을 좀 더 명확하게 획득할 수 있다. 주변에 법률구조공단, 대법원 ‘나 홀로 소송’, 마을변호사 등 무료로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활용해도 좋겠다. 수임료도 덜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판사는 ‘탕탕’ 판결만 내리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틀렸다.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지만 재판이 잘 진행되도록 이끄는 진행자 역할도 한다. 변호인 없이 개인이 소송을 할 경우 판사는 그 개인의 법률적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판사는 원고가 소장과 준비서면 작성, 법정 진술에 어려움을 겪거나 미숙하다면 잘할 수 있도록 조언해줘야 한다.”

―재판 과정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

“기죽지 말라. 재판을 하면 많은 사람이 상대방의 배경만을 보고 질 것이라고 지레 겁먹는다. 하지만 재판은 일대일의 싸움이다. 그 사람의 재력이나 권력과의 싸움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해 사실의 힘을 믿는 자는 재판에서 반드시 이긴다. 판사 앞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신념을 얘기하면 된다.”

―소송에 진 경우, 상대편 소송비를 부담해야 하지 않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통상의 경우 소송에서 져도, 판사가 상대편 변호사 수임료를 물어주라고 하는 금액이 보통 150만원을 넘지 않는다. 상대방 수임료가 1억원이라고 해서 다 물어주진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끝으로 소송과 관련한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문화재 제자리 찾기 등 공익소송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민사뿐 아니라 공익소송의 주체로 나섰으면 한다.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를 상대로 한 공익소송은 무고나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으니 더욱더. ‘소송을 두려워하지 말라!’”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소장을 작성한 뒤 변호사를 선임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소장을 작성한 뒤 변호사를 선임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소송
법원이 개인과 개인, 국가와 개인 간의 분쟁을 법률적으로 해결·조정하기 위해 대립하는 이해관계인 당사자를 관여시켜 재판으로 심판하는 절차를 말한다. 심판의 대상이 되는 사건의 성질에 따라 민사소송·형사소송·행정소송·선거소송·가사소송·특허심판 등으로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