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이혼 등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의 양육비를 국가가 우선 지급하고 책임이 있는 상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대지급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양육비를 부모 사이에 얽힌 채권채무가 아닌, 아이를 세상에 낸 책임이 있는 부모와 사회가 아이에게 진 채무로 보는 것이다. 양육비 이행을 책임지는 기관,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살펴봤다.

법은 때로 수렁의 삶을 건진다. ‘한부모 엄마’ 윤지영(가명·39)씨에게도 그랬다.

윤씨는 3년 전인 2014년 6월 협의이혼했다. 남편이 떠난 집엔 아이 셋이 윤씨와 함께 남겨졌다. 올해 13살, 10살인 남자아이 둘과, 이혼 7개월 전 태어나 올해 4살이 된 막둥이 딸까지. 이혼과 함께 네 식구 생계가 오롯이 윤씨 책임이 됐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13년 함께 살았던 다섯살 연상의 남편은 건물 외장재 붙이는 일을 했는데, 윤씨가 보기에 일을 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사람 좋아하고, 친구가 끊이질 않고, 쉬는 날도 눈만 뜨면 밖으로 도는 남편은 세 아이 양육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혼 뒤에도 남편은 약속한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이혼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준 170만원이 전부였다. ‘애초 돈 줄 마음이 없었던 거’였다.

“‘너 한번 당해봐’란 심보였겠죠. 내가 안 주면 너는 못 살아, 이런 거죠. 이혼 때 양육비를 약속하긴 했지만 아이들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쓰는 돈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약속은 그냥 홧김에 한 거고. 이후론 아무렇지 않게 그냥 본인만 혼자 살았던 거죠.” 윤씨는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씨는 대리운전 회사에서 고객을 관리하는 시간제 알바를 한다. 막둥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찾아오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다. 벌이가 모자라 틈틈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조립 일을 집에서 한다. 개당 몇원씩밖에 못 받지만, ‘애 셋 딸린’ 한부모 윤씨에겐 그나마도 감지덕지다. 한부모의 삶은 대체로 고달프다.

■ 받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한국에선 5쌍이 결혼할 때 2쌍이 이혼한다. 지난해 인구 1천명당 결혼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과 인구 1천명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조이혼율은 각각 5.5건, 2.1건이었다. 이혼 뒤 윤씨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구는 175만가구, 450만명(2014년 통계청)에 이른다. 전체 가구의 9.4%, 열 집 가운데 한 집꼴이다. 이들 한부모 가구 중에선 통상 열 집 중 다섯 집(47.3%)이 엄마와 자녀로 구성된 ‘모자가구’고, 두 집(19.8%)이 아빠와 자녀인 ‘부자가구’다. 나머진 다른 가족 구성원이 함께 사는 경우다. 한부모의 거의 대부분(87.4%)이 일을 하지만 월평균 소득이 189만6천원으로,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389만7천원)의 절반에 못 미친다.

2015년 여성가족부의 ‘한부모가족실태조사’를 보면,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한부모가 자녀 양육이나 가사에 쓰는 시간은 하루 평균 4~5시간인데, 모자가구는 5시간30분, 부자가구는 4시간6분이었다. 부자가구의 경우 자녀 양육·가사 시간이 일반 맞벌이 가구의 아빠들이 쓰는 시간보다 6배나 많다. 한부모가구는 18.5%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28%는 차상위 계층이나 저소득 한부모 가족으로 국가 지원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지만, 아이를 키워내는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은 한부모 대부분이 윤씨의 남편 같은 비양육부(혹은 모)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한다. 받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봐야 한다. 재판 등을 통해 양육비 채권을 갖고 있는 이가 10명 중 2명에 불과하고, 채권을 갖고 있어도 27.3%는 양육비를 받지 못한다. 자신을 세상에 내어놓고도 책임지지 않은 부모를 아이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지난해 10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서울의 한 놀이공원에서 연 핼러윈 파티 모습. 이혼 뒤 관계가 소원해진 비양육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를 개선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지난해 10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서울의 한 놀이공원에서 연 핼러윈 파티 모습. 이혼 뒤 관계가 소원해진 비양육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를 개선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2014년 3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이 제정된 것도 윤씨와 같은 한부모들이 양육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듬해 3월부터 시행된 법은 비양육 부모의 양육비 이행을 확보하고, 이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으로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행원은 법 시행과 함께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으로 출범해 햇수로 3년째 운영 중이다. 글자 그대로 ‘양육비 이행 관리’가 기관의 주된 일이다. 상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채권자인 양육모(혹은 부)의 신청을 받아 비양육부(혹은 모)한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당사자 간 협의, 관련 소송, 채권추심, 불이행 때의 제재 조처 등을 지원한다. 만 19살 미만(취학 중인 경우 만 22살 미만)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나 조손가족이 대상이며, 이혼한 부모뿐만 아니라 미혼모나 미혼부도 지원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같은 이행원의 위탁기관이 대신 처리해준다. 이행원 출범 뒤 올해 3월까지 만 2년 동안 접수된 상담 건수는 6만5000건. 이 가운데 공식 접수된 사례는 1만건, 비양육부모의 재산·소득을 조사해 합의 과정 등을 통해 받아낸 양육비는 144억원이다. 혜택을 받은 아이들이 1만4천명이다. 윤씨의 세 아이도 여기 속한다.

지난해 4월 윤씨는 이행원에 도움을 청했다. 이혼 뒤 2년 가까이 지나 생활이 어렵던 때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윤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돼 집 보증금과 생계급여를 지원받았다. 간간이 시간제 일자리로 돈을 벌지만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이었다. 밀린 양육비는 1500만원이었다. ■ 선진국처럼 제재 조처 있어야 이행원 협의성립지원부 직원은 윤씨의 요청을 받아 전남편에게 연락했다. 양육비 이행을 촉구했고,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급여가 압류되거나 강제집행 등 법적 조처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소득에 견줘 양육비가 부담스럽다면 액수를 줄일 수 있지만, 그 전에 성실한 이행이 우선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행원에서 실시하는 아이들과의 관계 지원 프로그램 참여도 권했다. 그해 여름 윤씨의 두 아들과 전남편은 서울의 한 놀이동산에서 1박2일을 함께 보냈다. 아이와 아빠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같이 잤다. 이혼 전에도 집에 잘 없던 아빠와 함께 꼬박 이틀을 보낸 아들들은 “엄~청 좋아했다”. 윤씨의 전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는 그 뒤 지난해 가을부터 꼬박꼬박 양육비를 보내온다. 일을 자주 쉬어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던 아빠는 이제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엔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윤씨와도 종종 본다. 이따금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다. “눈만 마주치면 싸웠던” 윤씨와 전남편은 이제 서로를 조심스레 대한다.

“저도 그렇고, 그분도 예전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행원이 훌륭한 중재 역할을 했죠. 전남편이랑 제가 직접 얘기하려면 좋은 소리가 오고 가기 힘들었을 텐데, 제 편의를 봐주면서 남편에겐 좋은 쪽으로 설득했어요. 덕분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많이 줄었어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연 비양육부모와 아이들의 관계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아이가 ‘우리 집’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연 비양육부모와 아이들의 관계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아이가 ‘우리 집’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제공

이행원의 도움이 유용하지만, 아직까진 청하는 이들이 적다. 이혼이나 미혼인 한부모를 대상으로 자녀양육비 청구 및 이행확보 절차 신청에 대해 조사(2015년)한 결과를 보면, 양육비 청구소송 경험은 6.7%, 양육비 이행확보 절차를 이용해본 경험은 5.9%에 불과했다. 이런 제도나 기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상대에게 양육비를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지레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시행 2년여에 불과한 양육비이행법 자체에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 법 15조 ‘양육비 이행 청구 및 조사’ 부분을 보면 ‘법원의 양육비 이행 청구서가 채무자에 송달되고, 이후 1개월 이내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에만 이행원의 소득·재산 조사가 가능하게 돼 있다. 이 규정을 악용해 청구서를 고의로 받지 않거나 본인 재산을 타인 명의로 이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양육비를 부담할 재산이 있는데도 이를 피하려는 것이다. 이행원 쪽은 소득·재산 조사의 조건이 되는 양육비 이행 청구서와 관련된 부분을 ‘발송 시점’으로 바꾸고, 양육비 미지급 기한도 현행 한 달에서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행원 관계자는 “이와 함께 양육비를 고의로 지급하지 않는 채무자에 대해선 선진국처럼 면허정지 등 제재 조처가 있어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통령 공약 ‘양육비대지급 제도’ 미혼일 경우 이혼한 경우보다 양육비를 받기 힘든데, 이 문제도 구조적이다. 이행원에 접수된 미혼 한부모(대부분 미혼모)의 상담 비율은 매우 낮다. 5월 기준 접수된 사례 9511건 가운데 미혼모는 536건(5.6%), 이 가운데 양육비가 지급된 것은 35건에 불과하다. 성사율로 따지면 한부모는 16%가량이지만 미혼모는 6.5%에 그친다. 그만큼 받아낼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통계(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형성원인별 한부모가구)를 보면 전체 한부모 가족 중 미혼모가 12%가량을 차지해요. 이혼한 경우가 33%, 나머지는 사별이나 조손가정 등이죠. 이행원을 통해 양육비를 받는 이들은 주로 이혼한 경우예요. 한데 정말 양육비가 필요한 경우만 놓고 보면, 다시 말해 사별처럼 상대가 존재하지 않거나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 보면 미혼모 비율이 26% 이상이예요. 그럼 전체 양육비 신청 건수나 지급이행 건수도 이 비율대로 가야 할 텐데, 미혼모의 양육비 이행건수는 6.5%밖에 안 되죠. 이건 미혼모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양육비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의 말이다.

2015년 기준 미혼모 수는 2만4487명.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해마다 새로 발생하는 미혼모가 2천명가량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상대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내려면 친자확인소송인 인지청구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이혼한 이들과 달리 미혼모들은 주민번호 같은 상대 기본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락이 끊겼거나 꺼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양육비를 받아내기 힘들 것 같다고 단정지어 지레 포기한다. 개인정보보호 예외 항목에 인지소송을 넣어 이행원이 최소한의 정보로도 상대를 특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혼모들은 통상 상대 전화번호는 알죠. 더러 돈을 주고받을 일이 있으니 은행 계좌를 아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그런 정보만으로도 상대의 주민번호를 알 수 있어야 해요. 법으로 열어놓고 통신사나 은행에서 이행원 쪽에 알려주면 돼요. 그래야 인지소송, 양육비소송 같은 다음 절차들이 가능해져요.”

이행원에 친자 확인을 위한 정보조회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친부(혹은 모)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아이의 생존권과 발달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육비를 국가가 우선 지급하고 상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대지급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양육비를 부모 사이에 얽힌 채권채무가 아닌, 아이를 세상에 낸 책임이 있는 부모와 사회가 아이에게 진 채무로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이미 수십년 전부터 그렇게 하는 일을, 우린 이제서야 대통령 공약에 넣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출산율 수치를 높이는 문제에 연연해할 일이 아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