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공간‘뿔′은 19평 땅 위에 지어졌다. 뿔이 들어서기 전·후 모습.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독립공간‘뿔′은 19평 땅 위에 지어졌다. 뿔이 들어서기 전·후 모습.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독립공간‘뿔′은 19평 땅 위에 지어졌다. 뿔이 들어서기 전·후 모습.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독립공간‘뿔′은 19평 땅 위에 지어졌다. 뿔이 들어서기 전·후 모습.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좁다란 골목 끝 하얀색 덩어리

출판사와 인쇄업체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울 북인스티튜트(SBI)를 지나 차 한 대가 겨우 오갈 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닮은 꼴 다세대 주택들 사이로 하얀색 덩어리가 비죽 고개를 내민다.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8길 9-13. 도로에 접한 건물면의 가로 길이는 6미터이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세로 길이는 10미터인 19평 땅. 그 위에 솟아난 이 건물의 이름은 독립공간 ‘뿔’이다. 1994년 태어난 도서출판 ‘갈무리’가 처음 갖게 된 공간이자, 갈무리가 2007년부터 운영해 온 인문학 강좌·세미나 프로그램 ‘다중지성의 정원(다지원)’의 보금자리다. 디딘 땅이 좁은데다 현행법상 주차장을 따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4개 층 바닥면적은 모두 합쳐 137.68㎡(약 41평) 남짓이다.

갈무리는 20여년 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주로 자율주의(국가·자본·정당 조직으로부터 독립을 지향하며,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려는 운동) 경향의 도서들이다. 뿔에는 갈무리가 걸어온 궤적이 켜켜이 쌓여있다. 1층과 3층 벽, 건물 오른편 위로 삐죽 솟아나온 ‘뿔’ 모양의 작은 공간까지 출판물이 빼곡히 꽂혀있다. 한 해 네 번으로 나눈 학기당 철학·문학·영화 등 15~20개 강좌가 진행되는 공간인 지하 1층 강의실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칠판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갈무리와 다지원의 대표는 정치철학자 조정환(60)씨다. 1980년대 말 노동해방문학론을 정립한 진보적 문예이론가였던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1990년∼1999년까지 10년 동안 수배자가 돼 도피 생활을 했다. 갈무리는 수배 중이던 그가 1994년 동료들과 함께 공부한 결과물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출판사다. 조 대표와 그의 짝꿍인 신은주 운영대표, 김정연 편집자, 김하은 인턴사원 등 4명이 지금의 갈무리를 이끌고 있다. 낮 시간 뿔을 지키는 건 김정연 편집자와 인턴사원 둘 뿐. 조정환 대표 부부는 몇 해 전 서울 전셋집의 전세금을 빼 제주에 조그만 거처를 마련했다. 이들은 필요할 때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간다.

1994년에 태어난 도서출판 갈무리는 지난 20여년동안 임대료 상승 때문에 여러 번 이삿짐을 싸야했다. 사진은 갈무리가 마지막으로 세를 살던 공간으로 뿔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다. 조한준 소장 제공
1994년에 태어난 도서출판 갈무리는 지난 20여년동안 임대료 상승 때문에 여러 번 이삿짐을 싸야했다. 사진은 갈무리가 마지막으로 세를 살던 공간으로 뿔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다. 조한준 소장 제공
20여년 활동…살 수 있는 땅은 고작 19평

20여년간 갈무리가 머물렀던 공간은 어디였을까. 첫 번째 사무실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역 인근에 있었다. 몇 달 뒤 구로동, 1999년 마포구 서교동, 2000년 서초구 방배동을 거쳐 2002년 다시 서교동 ‘출판 골목’으로 돌아온다. 홍대 주변 땅값이 계속 오르면서, 전월세 계약이 끝나는 2년 마다 서교동에서 서교동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뿔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은 갈무리가 2005년부터 10년 동안 둥지를 튼 곳이다. 아흔살 어르신이었던 건물 주인은 월세를 가능한 한 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2014년,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같은 건물에서 세를 살던 이웃들이 하나 둘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홍대 문화를 일군 많은 창작자에게 닥친 젠트리피케이션(동네 상권이 살아나면서 임대료가 치솟아 그 안에 살던 원주민이나 임대 상인이 쫓겨나는 현상)을 갈무리 역시 피하긴 어려웠다. 대형 출판사들이 주로 파주로 떠났지만 갈무리는 서교동에 머물기를 고집했다. “서교동은 여전히 출판의 메카다. 여러 강좌·세미나가 열리는 문화지구적 성격이 강한 곳을 떠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활동했고 정이 들어 떠나기 싫었다.”

조정환 대표는 매달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다. 다지원 운영은 영리를 위한 활동이 아니었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기관도 찾기 어려웠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해 온 출판사로서 공간을 소유하는 데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출판이든, 시민사회 운동이든 대부분 공간을 빌려서 활동한다. 임대료 상승은 이러한 활동의 생명줄을 끊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옥을 짓는 일은) 쫓겨나갈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맞서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조 대표는 제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살 종자돈 3억여 원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었던 땅은, 작은 단층집이 똬리를 틀고 있던 19평이 전부였다.

19평 땅 위에 지어진 뿔의 공간은 4개층을 모두 합쳐 40평을 조금 넘는다. 이전하기 직전에 사용하던 공간은 60평이었다. 조한준 소장은 갈무리가  그동안 해온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옥상을 뚫고 나온 작은 뿔과 뿔 내부 모습. 건축사진가 류인근 제공
19평 땅 위에 지어진 뿔의 공간은 4개층을 모두 합쳐 40평을 조금 넘는다. 이전하기 직전에 사용하던 공간은 60평이었다. 조한준 소장은 갈무리가 그동안 해온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옥상을 뚫고 나온 작은 뿔과 뿔 내부 모습. 건축사진가 류인근 제공
19평 땅 위에 지어진 뿔의 공간은 4개층을 모두 합쳐 40평을 조금 넘는다. 이전하기 직전에 사용하던 공간은 60평이었다. 조한준 소장은 갈무리가  그동안 해온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옥상을 뚫고 나온 작은 뿔과 뿔 내부 모습. 건축사진가 류인근 제공
19평 땅 위에 지어진 뿔의 공간은 4개층을 모두 합쳐 40평을 조금 넘는다. 이전하기 직전에 사용하던 공간은 60평이었다. 조한준 소장은 갈무리가 그동안 해온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옥상을 뚫고 나온 작은 뿔과 뿔 내부 모습. 건축사진가 류인근 제공
작은 건물짓기가 더 쉽다고?

2014년 말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네 건물짓기 문화에선 건축주·건축가·시공사가 단절돼 있다. 이들은 종종 이윤을 둘러싸고 대립을 하며, 건물짓기가 끝나면 다시는 안 보는 경우도 많다. 갈무리는 이런 식의 공간 마련을 피하고 싶었다. 건축주·건축가·시공사 세 주체가 협력해 ‘유쾌한 집짓기’를 하도록 도와주는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와 연이 닿았고, 그를 통해 건축사사무소 더함의 조한준(46) 소장과 손을 잡았다. 빠듯한 예산을 듣고 할 수 없는 일들을 명확히 했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조 소장은 ‘건물을 잘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비용은 사정을 봐가며 논의를 하자’고 했다. 제주에 있는 건축주를 대신해 조 소장은 거의 매일 공사 현장을 찾았다.

작은 건물이라고 해서 공사가 쉬운 것도 아니고, 큰 건물이라고 꼭 어려운 것도 아니다. 2015년 5월 시작된 공사 현장은, 건물짓기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모든 복병의 종합판이었다. 설계를 건물로 구현해 줄 시공사를 찾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도심 속 비좁은 땅에 건물을 짓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 어려운 공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갈무리가 빌려쓰던 공간은 60평가량인 데 반해 뿔은 40평이 조금 넘는다. 지금까지 이어 온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선, 지하에 공간을 마련할 수 밖엔 없었다. 막상 땅을 파보니 물기가 흥건한 ‘뻘’이 나타났다. 주변 건물이 모두 반지하로 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지하에서 나오는 물을 막고 이웃집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별도의 조처와 추가 공사가 필요했다. 공사를 위한 각종 자재를 둘 공간마저 부족해 이웃의 주차장을 빌려 써야했다. 공사 현장엔 매일 민원이 쏟아졌다. 건축주, 건축가, 시공사, 현장소장 등 건물을 짓는 주체들이 모두 인터넷을 통해 공사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공사를 하는 내내 난관의 연속이었지만,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인간적으로 너무 편했다.” 조 소장의 말이다.

지난해 말
지난해 말

갈무리에게 뿔이 현실에 맞서는 공간이라면, 조한준 소장에게 뿔은 건축가로서 도전의 공간이었다. 20년가량 건축일을 해 온 그에게 뿔은 그동안 설계한 건물 가운데 가장 작았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보이는 뿔의 외관은, 건물 높이를 제한한 규제를 지키면서도 이를 극복한 형태다. 조정환 대표는 지난해 11월 뿔 개원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건축주·건축가·시공사, 어느 누구도 경제적으로 이득을 본 사람이 없다. 모두 헌신한 결과로,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태어났다.” 조한준 소장은 뿔을 짓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가치를 경험하게 됐다고 했다. “모든 것을 소통할 수 있을 때,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공사를 함께 한 시공사, 건축주 분들과 지금도 연락을 한다. 흔한 일이 아니다.”

건축주·건축가·시공사가 함께 만들어낸 공간

뿔 2층에서 3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보면, 왼편으로 뚫린 기다란 창으로 시선이 간다. 벽돌색 옷을 입은 이웃집들과 뒤엉킨 검은색 전선줄이 한 눈에 보인다. 독립공간 뿔과 뿔을 둘러싼 풍경은 겉모습만큼이나 전혀 닮지 않은 두 개의 세계다. 두 개의 세계가 좁은 골목이라는 같은 공간에 자리 잡은 지 6개월이 지났다. 갈무리나 다지원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불쑥 뿔 안으로 들어와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궁금해하는, 전에 없던 일들이 생겨났다. 악조건을 뚫고 솟아난 뿔은 골목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정환 갈무리 대표(왼쪽 끝에서 세 번째)와 신은
조정환 갈무리 대표(왼쪽 끝에서 세 번째)와 신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영상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