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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주문이 밀려드네요, 예술공장에

등록 :2015-05-17 21:41수정 :2015-05-18 10:00

지난 10일 인디아트홀 공에서 1층 공장의 기계음이 들리는 가운데 공연한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여직공’. 양승호 제공
지난 10일 인디아트홀 공에서 1층 공장의 기계음이 들리는 가운데 공연한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여직공’. 양승호 제공
쇠락한 공장지대 파고든 예술인들
포화상태 된 ‘문래창작촌’ 떠나
인근 양평동으로 옮기는 이들 늘어
아직 돌아가는 금형공장 2층에
복합문화공간 ‘인디아트홀 공’
조병희 대표 “작가도 하나의 공장”
‘예술 짓는 공장’ 목표로 전시·공연
영등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896년 경인철도 영등포역을 지으면서부터다. 1901년 경부철도까지 건설되면서 영등포는 경부·경인철도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요충지로 떠올랐다. 철도·통신시설이 몰리며 상점, 식당, 여관들도 들어섰다. 이때 매춘업도 함께 유입돼 영등포에 ‘홍등’이 걸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산업화를 이끈 영등포 굴뚝산업은 1990대 말 쇠퇴기를 겪는다. 2000년대 초엔 공장 이전과 재개발로 빈자리가 늘었다. 문래동을 중심으로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예술가들이었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예술가들이 철공소 공간에 작업실을 열면서 문래창작촌이 형성됐다. 공단과 예술의 기막힌 동거다. 하지만 문래동의 예술공간은 이미 포화상태다. 뜀박질하는 권리금과 임대료 때문이다. 인근 지역으로 옮기는 예술가들도 나온다. 문래동 옆 양평동의 복합문화공간 ‘인디아트홀 공’과 ‘귀소공간’은 그 한복판에 있다. 산업사회를 상징하듯 우뚝 솟은 굴뚝 아래에서 ‘밥 짓는 공장, 예술 짓는 공장’을 목표로 이들은 지금 ‘문화 제조업’ 실험에 한창이다.

굴뚝산업 100년 ‘영등포 블루스’

영등포 100년사는 공장의 역사였다. 1919년 영등포동에 노동자 1500명의 경성방직이 들어선 뒤, 양평동 한국모방, 문래동 방림방적과 함께 영등포는 섬유공단으로 변모한다. 1933년엔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전신), 기린맥주(오비맥주 전신)가 자리잡았다. 특히 1931년 일제가 침략전쟁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영등포엔 기계·제련·염색 등 중화학공업과 군소 공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1940년대~1960년대 초에는 해태·롯데 등 제과업체가 이곳 산업을 이끌었다.

공장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였다. 도시로 온 시골 청년을 처음 맞는 곳이 영등포역이었고, 일자리를 얻어 노동의 땀과 눈물을 흘린 곳도 영등포였다. 1957년 도시산업선교회가 처음 문을 연 곳도 영등포다. 산업선교회는 인천·영등포·구로지역에 수많은 노조를 탄생시켰다. 동일방직·와이에이치(YH)무역 투쟁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영등포의 굴뚝산업은 1990년대 말 쇠락의 길로 돌아선다. 2010년 현재 영등포구엔 중소기업청 등록 벤처기업 339곳이 입주해 있다. 이는 구로·금천구 등 서울 서남권 공단이 2000년대 초 벤처·아이티(IT)기업이 밀집한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굴뚝산업이 물러난 자리엔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초록물고기>에선 조폭 문성근을 통해 재개발을 둘러싼 욕망의 공간으로 영등포를 표현했다. 재개발과는 별도로, 예술인들이 이 공간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공단지역에 젊은 예술가들이 입주해 낡은 공간에 새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2003년부터 철공소로 유명한 문래동엔 자발적인 문래창작촌이 형성됐다. 문래동 철강단지는 최근 영화 <어벤져스2>촬영지로 주목받았지만, 8~9년 전과 견주면 이제 40% 규모에 그친다. 서울시는 도심재생사업 차원에서 2010년 이곳에 문래예술공장을 지었다.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지역 문화 인프라다. 하지만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래동 창작공간은 포화상태다. 카페나 작업실 공간에 권리금이 붙으면서 속속 이곳을 떠나는 예술인도 나오고 있다.

산업화를 상징하는 높은 굴뚝 아래 자리잡은 ‘인디아트홀 공’과 ‘귀소공간’은 문래동에 이어 양평동에서 복합문화공간 실험을 하고 있다. 손준현 기자
산업화를 상징하는 높은 굴뚝 아래 자리잡은 ‘인디아트홀 공’과 ‘귀소공간’은 문래동에 이어 양평동에서 복합문화공간 실험을 하고 있다. 손준현 기자
문래동에서 다시 양평동으로

지하철 5호선 양평역 2번 출구를 나와 연립주택 골목에 들어서면 저 멀리 우뚝 치솟은 굴뚝이 보인다. “높게 솟은 굴뚝, 붉은 벽돌의 외벽, 게다가 철커덕철커덕 아직도 공장이 가동중이었어요.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끌렸어요.”

2012년 9월 조병희(47)씨는 순식간에 이 건물에 맘을 뺏겼다. 그는 원래 영화와 광고 음악을 만들었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와 김수정의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그곳에 ‘인디아트홀 공’을 세웠다. 금형·사출공장 20여곳이 모인 건물의 2층에 263㎡의 전시·공연 공간이 자리잡았다. 조병희 대표는 계약서보다 각서를 먼저 썼다. “재개발이 결정되면 무조건 이곳을 비워준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곳엔 양평동1가 재개발조합까지 있었다.

그의 말대로 ‘마법에 걸린 듯한’ 일이 일어났다. 올해 초 양손프로젝트가 유진오의 1930년대 소설을 원작으로 연극 <여직공>을 공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조 대표는 작품소개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주인공이 ‘옥순이’였기 때문이다. “제 어머니 성함이 옥순이거든요.” 그의 할머니는 70년 전 소설 <여직공>을 읽고 감명을 받아 딸 이름을 ‘옥순’으로 지었다. 지난 10일까지 <여직공>은 이곳 무대에 올랐다.

오는 29일엔 ‘말하는 영화제’가 열린다. “1층에 금형공장이 있듯 작가도 하나의 공장입니다. 작품이 돈으로 환원되는 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조 대표는 ‘자립’을 목표로 세웠다. 갤러리를 매개로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전시와 공연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곳엔 자생적으로 음악, 미술, 공예 등 개인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다만 서로 교류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은 거예요.” 문래동에 집중된 줄로만 알았던 예술인들이 이미 양평동에도 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조 대표는 ‘예술인 양평동 커뮤니티’도 조직할 생각이다.

같은 건물엔 또 다른 복합문화공간 ‘귀소공간’이 있다. 김동윤(29) 대표는 지난해 ‘2015 페스티벌 봄’ 운영팀장을 하며 이곳을 알게 된 뒤, 같은 해 10월 귀소공간을 열었다. 지금까지 조소 작품과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작업 등을 전시했고 ‘착한 오빠’ 밴드와 성악 콘서트 등을 진행했다. 그는 “귀소공간은 누구든 쉬고 싶을 때 찾아오는 공간, 글자 그대로 돌아오는 공간으로 가꾸려고 해요. 커피도 마시고 전시와 공연도 즐길 수 있는 곳 말이죠”라고 했다.

글·사진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양승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