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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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저 사막의 오아시스 열수분출공, 이를 잇는 징검다리 고래 주검
최근 강에서 쓸려온 통나무도 같은 기능 밝혀져…수십년간 심해생물 생태계 형성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물속에 물고기떼가 헤엄치는 곳은 바다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바다의 93%는 수심 200m 이상인 깊은 바다이다. 이곳엔 햇볕이 닿지 않아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육지로부터 영양분이 들어오기엔 너무 멀어 늘 영양부족 상태여서 사막과 비슷하다. 하지만 사막에도 물이 솟는 오아시스가 있듯이 심해저에도 오아시스가 있다.

난파된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찾아내 유명해진 미 해군의 유인잠수정 앨빈은 1977년 갈라파고스 군도 근처 2000m 해저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나오는 ‘굴뚝’을 발견했다. 강산성에 400도 이상의 고온의 열수가 나오는 이 분출구 주변엔 관벌레 등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생물이 들끓고 있었다.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섭입이 일어나는 남극 스크티아 해 일대의 열수분출공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섭입이 일어나는 남극 스크티아 해 일대의 열수분출공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열수분출공 근처는 유독물질과 고온의 열수가 뿜어나오는 곳이지만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간다. 조개와 새우
열수분출공 근처는 유독물질과 고온의 열수가 뿜어나오는 곳이지만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간다. 조개와 새우


이런 열수분출공이 해저 화산 등 해저 지각이 꿈틀거리는 곳을 중심으로 잇따라 발견됐다. 이들은 광합성 대신 황 성분이 포함된 열수에서 화학합성으로 에너지를 얻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또 해저지각이 대륙지각 밑으로 파고드는 곳에선 짓눌린 땅속에서 황화수소 등이 포함된 찬물이 뿜어 나오는 냉용출수지역이 있고, 이곳에도 다양한 심해 생물이 살아가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 종류가 보인다. 사진=미국립해양대기국(NOAA)
게 종류가 보인다. 사진=미국립해양대기국(NOAA)


이로써 황량한 사막 같던 심해저는 새로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관심을 모았고, 지구 생명의 출발점을 이런 심해저에서 찾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열수분출공이나 냉용수지역 생물에겐 결정적 약점이 있다. 해저 분출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출이 끝나면 오아시스는 문을 닫고 애초 사막 환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생물은 모두 사멸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압축해 심해저를 본다면, 방대한 심해저 여기저기서 생명의 불꽃이 한동안 깜빡이다 주변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가까운 열수분출공까지 거리가 수십~수백㎞나 되는데 어떻게 비슷한 심해저 생물이 곳곳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해양학자들이 이런 수수께끼를 풀 가설로 내놓은 것이 ‘징검다리 이론’이다. 멀리 떨어진 서식지를 이어주는 임시 서식지가 군데군데 있다면 심해생물이 고립돼 멸종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만 냉용출지역의 관벌레와 조개. 사진=미해양대기국(NOAA)
멕시코만 냉용출지역의 관벌레와 조개. 사진=미해양대기국(NOAA)


 

고래의 주검은 유력한 징검다리이다. 거대한 사체는 굶주린 심해 생물에 몇 년에서 몇십 년까지 계속되는 만찬을 제공한다. 미국 몬터레이 만 수족관연구소(MBARI)는 악취가 진동하는 고래 주검 5구를 3000m 심해에 빠뜨리고 원격조정 잠수정을 이용해 6년간 관찰하는 연구를 통해 죽은 고래가 다양한 심해생물의 서식처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처음엔 청소동물인 심해상어, 먹장어, 게 등이 몰려 살을 발라 먹었고, 이어 뼈와 찌꺼기를 먹는 다양한 동물과 미생물이 모여들었다. 이곳의 고래 주검은 10년 안에 모두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주변 여건과 생물상이 다른 해저에선 고래 사체가 완전히 없어지는데 100년까지 걸린다는 추정도 있다.

고래 주검이 3년에 걸쳐 생물활동으로 분해되는 과정. 사진=로니 룬드스텐
고래 주검이 3년에 걸쳐 생물활동으로 분해되는 과정. 사진=로니 룬드스텐


 몬터레이만수족관연구소(MBARI)
몬터레이만수족관연구소(MBARI)


고래 뼈를 전문으로 분해하는 생물 오세닥스
고래 뼈를 전문으로 분해하는 생물 오세닥스


최근엔 강에서 바다로 쓸려간 통나무도 고래 주검처럼 심해저 생태계의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는 보고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과학자들은 나일강 하구에서 가까운 1700m 심해저에 통나무를 집어넣고 1년 동안 무인잠수정으로 관찰했다.

가라앉은 목재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나무에 구멍을 뚫는 조개였다. 이들이 나무를 조각내고 배설물을 내놓자 다양한 미생물이 번창했다. 나무 분해미생물은 1년만에 100배로 불었다. 이런 통나무는 약 35년 동안 심해 생물을 먹여살릴 것으로 예상됐다.

고래 주검에 몰려든 먹장어. 사진=그레이그 스미스
고래 주검에 몰려든 먹장어. 사진=그레이그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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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해 생물이 어떻게 통나무를 찾아내는지, 분해 미생물이 물을 통해 오는지 아니면 해저를 통해 오는지 등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Bienhold C, Pop Ristova P, Wenzhofer F, Dittmar T, Boetius A (2013) How Deep-Sea Wood Falls Sustain Chemosynthetic Life. PLoS ONE 8(1): e53590. doi:10.1371/journal.pone.005359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