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사건 시간을 되돌려보자. 재작년 11월23일. 북한은 전날부터 국제 상선망을 통해 우리 쪽의 해상사격훈련에 대해 경고했다. ‘북의 군사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합참 정보본부의 첩보를 무시한 작전본부는 ‘계획된 사격훈련을 강행하라’고 연평부대에 지시한다. 북의 동향에 우리가 겁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방비상태의 연평부대가 해상사격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1.8㎞ 사정거리의 20㎜ 벌컨포 사격이 시작되었으나 북은 대응하지 않았다. 이어 13㎞ 사정거리의 105㎜포 사격이 진행되었으나 역시 북의 대응은 없었다. 여기서 사격훈련이 종료되었다면 비극적인 연평도 포격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40㎞ 사정거리의 K-9 자주포 사격이 시작되자 연평 앞바다에는 ‘물기둥’이 치솟았다. 당시 연평도에서 북의 해안까지 거리는 13㎞. 이걸 넘어 북의 후방, 즉 해주의 4군단사령부까지 폭격이 가능한 화기가 동원된 것이다. 이걸 본 북은 약 1시간 뒤에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76.2㎜ 평사포, 122㎜ 대구경포, 장거리 130㎜ 대구경포 등을 동원하여 연평도에 포탄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이 사건에 절치부심한 우리 군은 그해 12월20일에 재차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강행한다.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강행된 훈련에 북은 대응하지 않았다. 이튿날 보수언론은 “우리의 주권을 쏘았다”며 정당한 훈련에 북은 겁먹고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12월의 사격훈련에서 군이 K-9 자주포를 거의 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실상을 잘 아는 군사전문가들은 이날 사격훈련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북에 강경한 여론을 의식한 ‘국내정치용 사격훈련’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다. 이날 동원된 주된 화기는 벌컨포였다.

올해 2월20일에 실시된 사격훈련에서도 미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훈련 전날인 19일에 북한의 전선서부지구사령부는 “우리 영해에서 단 한 개의 수주(물기둥)라도 감시되면 무자비한 대응타격이 개시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 ‘물방울’이 아니라 ‘물기둥’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군은 이번에는 단거리 화기뿐만 아니라 K-9 자주포까지 동원하여 5000발을 사격했다고 발표했지만 화기별로 구체적인 사격내용은 역시 설명하지 않았다. 국방부가 언론에 공개한 훈련 사진도 K-9 자주포가 아니라 단거리 벌컨포 사격장면이었다. 그러니 물기둥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일련의 국방부식 설명은 단 한 가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정당한 사격훈련을 강행하자 북은 겁먹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도 역시 같은 메시지다. 북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2월24일 “(남쪽이) 사격구역을 옮기고 포사격하는 흉내만 내 인민군대가 용케 참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군 당국이 “사격구역도 변경한 것이 아니고 포사격도 정상적으로 했다”고 해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남북의 공방은 “누가 먼저 겁을 먹었느냐”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이걸 정치학자들은 ‘치킨게임’이라고 말한다. 남북은 교전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상대방의 ‘소심함’에서 찾고자 한다.

이런 치킨게임은 실제 충돌이 아니라 ‘누가 겁쟁이인가’를 입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마주 달려가는 자동차처럼 남북의 군대는 요란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은근히 브레이크도 밟는다. 그리고 외친다. “저 친구가 먼저 피했어요.” 그러나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라면 자신이 한 군사행동의 내용을 소상히 밝히는 것 아니겠는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