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표현물 판매 혐의’ 1심에서 무죄판결 김명수씨

“국가보안법은 치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살이지만 불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 하루속히 그 환부는 제거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1980년대 대학가를 나돌던 중고 사회과학 책을 팔았다는 이유로 2007년 5월 경찰에 구속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김명수(55·사진·<한겨레> 2007년 5월4일치 13면)씨의 법정 최후 진술이다.

이런 진술을 한 지 5개월, 그리고 기소된 지 4년 만인 지난달 30일 그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기쁨보다는 ‘아직도’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경찰에 체포될 당시 울먹이던 중학생 아들 녀석이 어느덧 대학생이 됐고, 새내기 대학생이던 딸이 대학원에 입학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이제 고작 1심이 끝났기 때문이다. 50여차례 넘게 법정을 드나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 했던 김씨. 국문학(현대문학)을 전공한 그는 구속당했던 해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꿨다. 하지만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이젠 불보 듯 뻔한 검찰의 항소에 맞서 또다시 길고 긴 투쟁을 해야만 할 처지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서 ‘미르북’이란 인터넷서점을 운영하던 김씨는 2007년 4월30일 오전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형사들의 ‘습격’을 받은 뒤 긴 어둠의 터널에 갇히고 말았다. 경찰은 당시 북한의 혁명 가극인 <꽃파는 처녀>와 <민중의 바다>(원제 <피바다>) 등을 압수하고는 북한 체제를 고무·찬양한 이적표현물을 판 혐의를 적용해 그를 구속했다. 또 <해방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등 80년대 인기 사회과학 책 170여종 200여권도 임의제출 형식으로 거둬들였고, 김씨에게 이런 책을 주문한 60여명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처벌 여부를 검토해 논란을 일으켰다.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97년 김영삼 정권 말기 이후 10년 만의 일이어서 진보진영에겐 자못 충격이었다. 이에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가 잇따랐고 김씨의 구명운동도 이어졌다.

김씨는 “대학은 물론 국회도서관 등에도 비치돼 열람되고, 대형 서점에서 팔고 있던 책”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과 지루한 공방을 벌여온 김씨에 대한 1심 판결은 지난해 11월26일 예정돼 있었으나, 사흘 전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미뤄지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김씨는 자신의 사건에 대해 “21세기 문명사회에 되살아난 분서갱유와 같은 야만 증상이 한 나라의 지적 체계를 통제·탄압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