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피난행렬 = 1950년 6월30일께
한강 피난행렬 = 1950년 6월30일께

 1950년 6월25일 새벽,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임인식(1920~1998) 중위는 전선으로 달려갔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방부 소속 정훈국에 사진대를 긴급 편성해 전쟁 상황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겼고, 육사 8기였던 임 중위는 사진대 대장으로 임명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혹하고 처절했던 한국전쟁 현장을 촬영했다.

 한국 최초의 종군사진가였던 그가 남긴 한국전쟁 미공개 사진들을 <한겨레>가 입수해 소개한다.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된 서울 중심가, 눈보라 날리는 엄동설한에 소 한 마리를 운송수단 겸 식량 삼아 피난가는 가족들,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해 총을 들어야 했던 중학생들의 앳된 얼굴…. 임인식 사진대장은 한국전쟁이 이 땅과 사람들에게 남긴 흔적과 상처, 그 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이어갔던 한국인의 치열한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952년 은성 화랑무공훈장을받은 그는 대위로 예편한 뒤 대한사진통신사를 설립해 전쟁 사진과 전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상을 찍은 사진을 외국 통신사들에 제공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사진들은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친 사진가집안이다. 임석재 사진가가 그의 숙부이고 국내 대표적인 건축사진가인 임정의씨가 장남, 사진작가 임준영씨가 그의 손자다.

 폭파된 한강철교 옆에 만든 임시 부교를 건너는 피난민. 피난민들은 소에 짐을 싣고 가다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먹기도 했다.
폭파된 한강철교 옆에 만든 임시 부교를 건너는 피난민. 피난민들은 소에 짐을 싣고 가다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먹기도 했다.
한강철교 폭파 장면 = 전쟁 발발 사흘 뒤인 1950년 6월28일 북한군 진격을 막기 위해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가 폭파됐다. 영등포 쪽에서 촬영.
한강철교 폭파 장면 = 전쟁 발발 사흘 뒤인 1950년 6월28일 북한군 진격을 막기 위해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가 폭파됐다. 영등포 쪽에서 촬영.
1950년 가을
1950년 가을
 국군 위문공연을 바라보는 군인들 =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마음을 달래주는 다양한 공연들이 이어졌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군예대를 조직해 트럭과 천막을 무대 삼아 재담과 노래로 공연을 펼쳤다. 초가집 위에 올라가 위문공연을 보는 군인들의 모습. 지붕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국군 위문공연을 바라보는 군인들 =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마음을 달래주는 다양한 공연들이 이어졌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군예대를 조직해 트럭과 천막을 무대 삼아 재담과 노래로 공연을 펼쳤다. 초가집 위에 올라가 위문공연을 보는 군인들의 모습. 지붕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학도의용군 = 학도의용군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서울 성동공업중학교 자치회가 내건 펼침막 앞에서 어린 학생이 입대를 다짐하고 있다.
학도의용군 = 학도의용군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서울 성동공업중학교 자치회가 내건 펼침막 앞에서 어린 학생이 입대를 다짐하고 있다.
서울시청 앞 의용군 환송 행사 =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입대축하식 모습. 왼쪽 뒤
서울시청 앞 의용군 환송 행사 =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입대축하식 모습. 왼쪽 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