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관리를 결합시킨 선구자 프레더릭 테일러.
기술과 관리를 결합시킨 선구자 프레더릭 테일러.


기술 속 사상/테일러주의와 엔지니어의 꿈

요즘에 구인 광고란을 보면 새로운 직종이 많이 생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술관리’다. ‘관리’라는 단어 앞에 붙일 수 있는 업무가 인사, 조직, 재무, 회계, 생산, 판매를 넘어 기술로 확장된 것이다. 기술이 점점 복잡해지고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그것을 관리하거나 기획하는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역사상 기술과 관리를 결합시킨 선구자로는 과학적 관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 1856~1915)를 들 수 있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배경은 테일러가 기업의 관행을 개혁할 수 있는 기술자 및 관리자로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철강산업과 기계산업의 중심지였고, 테일러의 집안은 기업가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청교도적인 품성은 실용적인 활동을 장려하고 게으름을 죄악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다.

기술과 관리 결합시킨 선구자

테일러는 1878년에 미드베일 철강회사에 일반노동자로 입사한 후 기계공, 조장, 직장, 주임을 거쳐 수석 엔지니어로 승진했으며, 스티븐스 공과대학을 야간으로 다니면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철강산업과 기계산업에서 보편화되어 있었던 ‘은밀한 태업’(soldiering)의 관행에 직면하면서 관리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은밀한 태업은 공식적 태업(sabotage)과 달리 적당히 일함으로써 산출고를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생산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권한이 숙련노동자들에게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테일러는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미드베일 철강회사에서 금속절삭작업을 대상으로 새로운 관리법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890년부터는 ‘경영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내걸고 다양한 기업의 기술적·경영적 문제에 대한 자문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테일러는 1898~1901년에 베들레헴 강철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신의 관리법을 체계화하였다. 그 이후에는 현업에서 은퇴하여 자문, 강연, 저술 활동에 몰두하면서 <공장관리>, <금속절삭의 기술에 관하여>, <과학적 관리의 원리들> 등의 저작을 남겼다.

테일러리즘의 핵심적인 관념은 과업(task)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에게 미리 부과되는 하루의 공정한 작업을 뜻한다. 테일러는 작업도구와 작업방법에 관한 시간연구(time study)를 통해 과업을 설정하였고, 노동자에게 과업 실행의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 차별적 성과급제(differential piece rate)를 개발했으며, 과업이 제대로 실행되고 관리될 수 있도록 기획부(planning department)와 기능별 직장제(functional foremanship)를 고안하였다.

테일러주의는 금속절삭작업의 도구와 방법을 표준화하기 위한 시간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테일러는 작업도구의 칼날의 형태와 사용방법을 개량하고 도구를 규격화하여 노동자들이 사용할 도구를 자세히 지시하였다. 또한, 그는 노동자들의 작업을 기본동작으로 분해한 후 쓸모없는 동작을 제거하고 각 동작별로 최선의 것을 찾아낸 후 스톱워치(stop watch)로 단위시간을 측정하였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작업에 대하여 도구, 동작, 시간을 결합하여 테일러는 노동자에게 미리 부과할 수 있는 과업을 구성하였다.

시간연구의 초보적인 형태는 19세기 영국의 과학자이자 기술자인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이미 시도한 바 있었다. 그러나 배비지가 업무 수행의 총 시간에 만족했던 것에 반해 테일러는 작업을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분해하여 분석한 후 이를 다시 결합시켰다. 또한 배비지는 실제로 행해졌던 시간을 측정했던 반면 테일러는 작업이 수행되어야만 하는 시간에 초점을 두었다. 테일러는 “한 사람이 주어진 일정량의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전체 시간에 대한 단순한 통계는 시간연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20세기초 도마에 오른 테일러주의
송성수/부산대 교수·기술학
송성수/부산대 교수·기술학

차별적 성과급제는 노동자가 과업을 달성한 경우에는 임금에 높은 비율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낮은 비율을 적용하는 임금제도였다. 그것은 과업을 달성한 노동자가 이전에 비해 30~100%의 임금을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특히, 테일러는 차별적 성과급제의 성패가 기계와 작업에 관한 정밀한 시간연구를 통해 적절한 과업을 구성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기획부는 이전에 숙련 노동자들이 가졌던 작업에 대한 지식을 관리자의 손으로 옮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것은 ‘구상과 실행의 분리’ 혹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로 상징된다. 기능별 직장제는 참모 기능이 강화된 수평적 조직으로서 기획부와 작업장에 각각 4명씩 배치된다. 그들은 각각 작업 순서의 결정, 작업지시카드의 작성, 임금 산출의 내역 계산, 업무의 조정, 작업 방법의 교육, 작업 속도의 설정, 기계의 관리 빛 정비, 제품의 품질 검사를 담당하였다.

테일러주의는 20세기 초 미국 사회에서 두 번의 커다란 시험대에 올랐다. 1910년에 동부철도회사가 운임 인상을 요구했을 때 당시에 ‘민중의 변호사’로 불린 브랜다이스(Louis D. Brandeis)는 테일러의 방법을 적용하여 비능률적 요소를 제거하면 운임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과학적 관리’라는 용어는 그 때 만들어져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테일러는 워터타운 병기창(Watertown Arsenal) 사건을 매개로 1911~1912년에 청문회에 불려가기도 했다. 워터타운의 경영진은 테일러주의를 적용하려고 했지만 노동조합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노동조합은 테일러주의를 도입하면 작업속도가 빨라지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 청문회는 과학적 관리를 위해 별도의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처럼 테일러주의가 반드시 경영진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테일러주의를 경영진과 노동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사실상 테일러는 자신의 관리법을 개발하면서 엔지니어를 핵심적인 주체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임금 산출의 기준이 되는 작업속도를 엔지니어가 정했다는 점, 시간연구를 통해 작업에 대한 지식을 엔지니어에게 집중시켰다는 점, 기능별 직장제를 통해 기획부나 작업장의 주요 업무를 엔지니어가 담당하였다는 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엔지니어가 전문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공장관리를 주도함으로써 노사양측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테일러는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한 공장관리에 관심을 기울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엔지니어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테일러 이전 세대의 엔지니어들은 공장의 소유주인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독립적인 사업가에 가까웠다. 그러나 테일러 세대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고용인이었고 이에 따라 이전과 같은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지위하락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엔지니어 자신이 독자적인 사업을 하는 방법과 공장관리의 문제를 공학의 한 분야로 취급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방법은 통로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후자의 방법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테일러가 주목했던 것도 공장관리의 문제를 엔지니어가 담당하는 방법이었다.

엔지니어를 주체로 설정했으나

그러나 테일러주의의 이상이 실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경영진에 종속되는 정도가 심해지면서 공정한 전문가로 기능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테일러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무시하고 단순한 기법만을 도입하는 사례도 속출하였다. 특히, 제3세계의 경우에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어 “출혈적 테일러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테일러주의는 기술적?조직적 측면에만 중점을 둠으로써 인간적?사회적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테일러주의가 인간적인 요소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집단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치중하다보면 인간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테일러주의가 인간을 기계와 조직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송성수/부산대 교수·기술학